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5일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떠났다. 외교부는 13일 오후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발표한 뒤 9시간 만에 경질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방미 취소까지 검토했다가 회의 끝에 예정대로 추진키로 했다. 국무장관 지명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과의 면담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 존 설리번 장관대행과의 회담은 기존 한·미 공조를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에서 패싱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교부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강 장관은 출국에 앞서 “각 부처가 역할 분담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외교부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해 보인다. 지난 1월 9일 남북 첫 접촉이던 고위급 당국회담에 참여한 것을 끝으로 외교부는 이후 접촉에서 모두 배제됐다. 대북 특사단은 차치하더라도 대미 특사단에 외교부 관계자가 빠진 건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북핵 국면이 요동치고 있는 상황인데 외교부 관계자는 찾아볼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으로 강 장관이 이름을 올린 게 전부다. 폼페이오 지명자가 서훈 국정원장과 신뢰를 쌓아 왔던 인물인 만큼 정상회담 조율 과정에서도 외교부 패싱 논란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청와대가 외교 사안을 틀어쥐고, 외교부는 뒷수습을 맡는 모습은 문재인정부 들어 이제 익숙하게 다가올 정도다. 청와대가 외교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핵 외교 전문가 집단인 외교부가 외교 사안의 내막을 모르니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외교부가 패싱 우려를 돌파하려는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선 한·미의 입장 조율이 중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주변국의 협조도 필수다. 이 같은 북핵 외교를 총괄하는 실무 부처는 외교부여야 한다. 그만큼 경험이 축적된 곳이 없다. 외교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정상회담의 목표와 역할 분담 등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지금은 외교 당국 사이의 정상적인 채널을 가동할 때다. 외교부는 청와대 탓만 할 게 아니라 먼저 아이디어와 전략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스스로 존재감을 입증해야 한다.
[사설] 희미해진 외교부 존재감… 강경화 장관은 알고 있나
입력 2018-03-16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