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눈 대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봐요”

입력 2018-03-16 00:01
이현민 목사(오른쪽)가 지난 13일 시무교회인 경기도 시흥 예찬교회에서 아내 김정아 사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베체트병이라고요?”

생전 처음 듣는 병명에 그는 갸우뚱했다. 어느 날부턴가 입안이 헐고 온몸에 반점이 생겼다. 눈까지 침침해지고 멀쩡한 사물까지 찌그러져 보여서 부랴부랴 병원에 들렀는데, 이어지는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현재로선 치료약이 없습니다. 시력을 잃을 수도 있고요.” 그때가 1997년이었다. 2년 뒤, 그는 희미한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시력 0’,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이 됐다.

그로부터 21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던 20대 중반의 복학생은 마흔 중반의 개척교회 목사로 변신해 있었다. 지난 13일 경기도 시흥시 대은로 예찬교회에서 이현민(45) 목사를 만났다. 두 눈을 잃은 뒤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희귀성 난치병 진단을 받은 뒤 그는 외할머니를 따라 병을 고친다는 기도원에 들렀다. 하지만 되레 증상이 악화됐다.

기도원을 다녀온 날 밤,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정말 있을까. 있다면 한번 믿어보고 싶다.’

“그땐 정말 심령이 가난해졌을 때였어요.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했어요.” 당시 그는 교회에 다녔지만 비신자나 다름없었다. ‘하나님은 나와 상관없는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기도원을 다녀온 이튿날, 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알고 지내는 형과 만나기로 했는데, 아프고 난 뒤 외출이 쉽지 않은 때였어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거짓말로 교회에 가겠다며 성경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죠. 성경을 손에 든 채 커피 전문점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이 성경은 진리다. 믿어야 한다’는 확신 같은 게 생기는 겁니다. 너무 신기했어요.”

이후 그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그런 갈급함은 자연스럽게 성경을 파고들게 만들었다. 눈으로 읽을 수 없기에 오디오 성경을 듣고 또 듣기를 200여 차례. 지난 20년 동안 약 5주마다 한 번씩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를 독파한 셈이다. 그사이 그는 서울신학대 선교영어학과와 같은 대학 신학대학원을 마쳤다. 개척 교회는 2009년 시작했다.

성경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자 성경강해 작업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말에는 성경강해 시리즈 가운데 창세기·출애굽기 편인 ‘성경강독 1’(올리브북스)을 처음 펴냈다.

책에는 구약 율법 속에 감춰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비밀과 하나님 언약을 근본으로 삼는 성도들의 믿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목사는 “나는 두 눈을 잃은 뒤 성경을 통해 구원의 빛을 본 사람”이라며 “비록 육신의 눈은 잃었지만 영적인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흥=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