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가 비선실세의 국정 개입을 가능케 한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지난해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서 이러한 내용의 보충의견을 제시했다.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라는 것이다.
4·19혁명부터 1987년 6월 항쟁 직후까지 헌법은 9차례에 걸쳐 고쳐지고 다듬어졌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불행한 역사는 그치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받고 15일 오전 귀가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던 대통령들은 왜 퇴임 후 검찰에 소환될까. 안 재판관은 대통령을 견제할 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그는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권력 형성(선출)에는 획기적 변화가 있었지만, 대통령 권력 행사의 정당성 측면은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봤다. 법률안 제출권과 예산·편성권, 행정입법권 등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지만 이를 견제할 장치는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 재판관은 “이러한 현재의 권력 구조가 비선조직의 국정 개입이나 대통령의 권한남용, 정경유착 같은 정치적 폐습을 가능케 했다”고 지적했다.
안 재판관은 “이번 탄핵심판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은 통치보다는 협치, 집권보다는 분권, 투명하고 공정한 권력행사로 나아갈 것을 명령하고 있다”며 권력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심판을 넘어 권력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권한 집중… 그래서 불행한 ‘제왕적 대통령’
입력 2018-03-16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