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우리 단일팀 선수 모두 부상 없이 올림픽을 잘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조수지(24) 선수의 감사고백이다.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으로 전 세계에 감동을 준 35명 중 한 명이다. 포지션은 공격수, 등번호는 16번. 새러 머리 감독과 선수들 간 통역사로 활동할 정도로 팀 내에서 소통의 중심이었다.
조 선수는 다음 달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었다. 평일엔 학교(중앙대 체육교육학과)에 다닌다. 서울과 진천을 바쁘게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조 선수를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만났다. 웃음이 많았다.
단일팀에서 ‘소통의 창구’이다 보니 그는 12명의 북한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동갑내기 여송희 최은경, 한 살 어린 황충금 선수와 가까웠다.
“선수들은 보통 시합할 때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어요. 햄버거 콜라 같은 걸 먹고 싶지만 일부러 멀리해요. 특히 감독님 앞에선 더더욱 눈치를 보며 안 먹죠. 한번은 선수촌 식당에서 건강식으로 밥을 먹는데, 북한 선수들이 두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오는 겁니다. 충금이는 감자튀김이랑 아이스크림을 들고 와 ‘언니도 먹을래요’라고 묻더라고요. 감독님에게 혼날까 봐 작은 목소리로 ‘뭐하냐, 빨리 숨기라’고 손짓했어요. 우리 선수들은 조마조마한데, 북한 선수들은 ‘일없다’며 맛있게 잘 먹더라고요. 서로 눈치 보는 우리들 모습에 웃음이 났어요.”
이렇게 웃고 떠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정부 결정에 찬반 논란이 심했다. 올림픽 하나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뛰어온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하나 됨이 가능했을까.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북한 선수들을 상대팀으로 만난 적이 있어요. 우리는 북한 소식을 자주 접하니 그들이 낯설지 않고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외국인들과 달리 우린 언어도 피부색도 같잖아요. 그야말로 한민족이죠. 북한 선수들 볼 때마다 미소 짓고 손도 흔들었는데, 그들은 시종일관 무표정이더라고요. 그렇게 두세 번 만나니 어느 순간 선이 그어졌어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요. 북한 선수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훈련, 식사도 따로 하니 어색했다. 하지만 또래여서일까, 3일 만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학교에 입학하면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하잖아요. 저희도 그랬어요. 신입생처럼 이름이 뭐고 가족관계는 어떻고, 북한에선 어떤 공부를 하고 뭘 좋아하는지 말했어요. 남자친구 있냐고도 물어봤고요. 북한엔 프로 여자아이스하키팀이 6개나 된대요. 우린 한 팀도 없는데…. 깊은 속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아픈 친구가 있으면 서로 걱정하고 챙겨줬어요.”
북한의 최은경 선수가 그랬다. 체구는 작은데 입맛이 없어 제대로 식사를 못하니 안쓰러움에 마음이 쓰였다. 그러다 보니 친해졌다. 단일팀으로 있는 동안 최 선수를 비롯해 진옥 김향미 선수가 생일을 맞아 함께 축하했다.
“동갑인 은경이가 제 생일을 묻더라고요. 9월 9일이라고 알려줬더니, ‘네 생일은 절대 안 까먹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날이 북한에선 중요한 날(구구절)이래요. 그러면서 ‘그날 남측을 바라보겠다’고 했어요. 절 생각해주는 은경이가 보고 싶을 거 같아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젠 북한 선수들을 볼 기회가 없다. 최근 2∼3년 동안은 세계선수권 같은 디비전(4부 리그)에서 시합을 했기에 만났다. 그러나 올해 한국은 승격해 3부 리그에서 뛴다. 조 선수는 “너희도 빨리 이겨서 내년엔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헤어지던 날 단일팀 선수들은 많이 울었다. 몸을 부대끼며 한 달을 같이 생활했으니 정이 많이 들었다. “외국 선수들에겐 SNS나 이메일로 연락하자고 말할 수 있지만 북한 선수들에겐 그럴 수 없잖아요. 기약 없는 이별이라 더 슬펐어요. 우리 선수들과 그런 얘기도 나눴어요. 잠깐이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알겠다고요.”
조 선수는 모태신앙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 친구의 권유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잠시 쉬었다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인 아이스하키팀에 들어갔다. 취미로 다시 시작한 팀에서 허정우 감독을 만났고 그의 권유로 국가대표까지 됐다. 경기가 안 풀리거나 힘들 때면 허 감독에게 카카오톡을 보낸다. 허 감독 답변은 한결같다. ‘하나님만 믿고 가라.’
“2년 전 축구 국가대표였던 이영표 집사님을 만났는데, 그때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기도를 드릴 땐 ‘뭐뭐 해주세요’ 같은 조건 있는 기도 말고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해야 한다고요. 올림픽 중에 조건 있는 기도를 많이 드렸는데, 하나님께선 합력해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인도해 주셨어요.”
올림픽은 끝났고 남북단일팀도 해체됐지만 조 선수를 비롯한 35명의 여전사들이 써 내려간 평화의 메시지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미션&피플] 女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조수지 선수
입력 2018-03-16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