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女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조수지 선수

입력 2018-03-16 00:01
조수지 선수가 14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조 선수는 다음 달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치면 곧바로 교생 실습을 나가야 한다. 강민석 선임기자
지난달 4일 인천 선학링크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친선 평가전에서 조수지 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 선수가 공격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월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도착한 북한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 한국선수들이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왼쪽이 조수지 선수. 국민일보DB
“이번에 우리 단일팀 선수 모두 부상 없이 올림픽을 잘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조수지(24) 선수의 감사고백이다.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으로 전 세계에 감동을 준 35명 중 한 명이다. 포지션은 공격수, 등번호는 16번. 새러 머리 감독과 선수들 간 통역사로 활동할 정도로 팀 내에서 소통의 중심이었다.

조 선수는 다음 달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었다. 평일엔 학교(중앙대 체육교육학과)에 다닌다. 서울과 진천을 바쁘게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조 선수를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만났다. 웃음이 많았다.

단일팀에서 ‘소통의 창구’이다 보니 그는 12명의 북한 선수들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동갑내기 여송희 최은경, 한 살 어린 황충금 선수와 가까웠다.

“선수들은 보통 시합할 때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어요. 햄버거 콜라 같은 걸 먹고 싶지만 일부러 멀리해요. 특히 감독님 앞에선 더더욱 눈치를 보며 안 먹죠. 한번은 선수촌 식당에서 건강식으로 밥을 먹는데, 북한 선수들이 두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오는 겁니다. 충금이는 감자튀김이랑 아이스크림을 들고 와 ‘언니도 먹을래요’라고 묻더라고요. 감독님에게 혼날까 봐 작은 목소리로 ‘뭐하냐, 빨리 숨기라’고 손짓했어요. 우리 선수들은 조마조마한데, 북한 선수들은 ‘일없다’며 맛있게 잘 먹더라고요. 서로 눈치 보는 우리들 모습에 웃음이 났어요.”

이렇게 웃고 떠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남북단일팀 구성에 대한 정부 결정에 찬반 논란이 심했다. 올림픽 하나만을 바라보고 열심히 뛰어온 선수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하나 됨이 가능했을까.

“작년 세계선수권에서 북한 선수들을 상대팀으로 만난 적이 있어요. 우리는 북한 소식을 자주 접하니 그들이 낯설지 않고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외국인들과 달리 우린 언어도 피부색도 같잖아요. 그야말로 한민족이죠. 북한 선수들 볼 때마다 미소 짓고 손도 흔들었는데, 그들은 시종일관 무표정이더라고요. 그렇게 두세 번 만나니 어느 순간 선이 그어졌어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요. 북한 선수들이 마음을 열고 다가왔습니다.”

처음엔 훈련, 식사도 따로 하니 어색했다. 하지만 또래여서일까, 3일 만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학교에 입학하면 자기소개를 돌아가면서 하잖아요. 저희도 그랬어요. 신입생처럼 이름이 뭐고 가족관계는 어떻고, 북한에선 어떤 공부를 하고 뭘 좋아하는지 말했어요. 남자친구 있냐고도 물어봤고요. 북한엔 프로 여자아이스하키팀이 6개나 된대요. 우린 한 팀도 없는데…. 깊은 속 얘기는 할 수 없지만 아픈 친구가 있으면 서로 걱정하고 챙겨줬어요.”

북한의 최은경 선수가 그랬다. 체구는 작은데 입맛이 없어 제대로 식사를 못하니 안쓰러움에 마음이 쓰였다. 그러다 보니 친해졌다. 단일팀으로 있는 동안 최 선수를 비롯해 진옥 김향미 선수가 생일을 맞아 함께 축하했다.

“동갑인 은경이가 제 생일을 묻더라고요. 9월 9일이라고 알려줬더니, ‘네 생일은 절대 안 까먹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날이 북한에선 중요한 날(구구절)이래요. 그러면서 ‘그날 남측을 바라보겠다’고 했어요. 절 생각해주는 은경이가 보고 싶을 거 같아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젠 북한 선수들을 볼 기회가 없다. 최근 2∼3년 동안은 세계선수권 같은 디비전(4부 리그)에서 시합을 했기에 만났다. 그러나 올해 한국은 승격해 3부 리그에서 뛴다. 조 선수는 “너희도 빨리 이겨서 내년엔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헤어지던 날 단일팀 선수들은 많이 울었다. 몸을 부대끼며 한 달을 같이 생활했으니 정이 많이 들었다. “외국 선수들에겐 SNS나 이메일로 연락하자고 말할 수 있지만 북한 선수들에겐 그럴 수 없잖아요. 기약 없는 이별이라 더 슬펐어요. 우리 선수들과 그런 얘기도 나눴어요. 잠깐이지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알겠다고요.”

조 선수는 모태신앙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엄마 친구의 권유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잠시 쉬었다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인 아이스하키팀에 들어갔다. 취미로 다시 시작한 팀에서 허정우 감독을 만났고 그의 권유로 국가대표까지 됐다. 경기가 안 풀리거나 힘들 때면 허 감독에게 카카오톡을 보낸다. 허 감독 답변은 한결같다. ‘하나님만 믿고 가라.’

“2년 전 축구 국가대표였던 이영표 집사님을 만났는데, 그때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기도를 드릴 땐 ‘뭐뭐 해주세요’ 같은 조건 있는 기도 말고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해야 한다고요. 올림픽 중에 조건 있는 기도를 많이 드렸는데, 하나님께선 합력해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인도해 주셨어요.”

올림픽은 끝났고 남북단일팀도 해체됐지만 조 선수를 비롯한 35명의 여전사들이 써 내려간 평화의 메시지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