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이성규] ‘양치기 정부’와 김동연

입력 2018-03-16 05:05

4년 전 이맘때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그 계획대로라면 3년 뒤인 2017년에는 4%대 잠재성장률에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또 2017년까지 청년과 여성 일자리를 각각 50만개, 150만개씩 새롭게 만들어 능력 있는 청년과 여성이 마음껏 일하게 해주겠다고 공언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이를 “우리 경제의 퀀텀 점프(Quantum-Jump·대도약)”라고 표현했다. 당시 정부 말대로라면 지금의 최악의 청년실업난은 ‘남의 나라’ 얘기여야 한다.

현 부총리 바통을 이어받은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가계소득 증대 3종 세트’를 마련해 가계를 배불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4년 동안 대표적 불로소득인 부동산 값은 근로자 임금보다 3배 더 올랐다. 같은 기간 부동산 보유자의 세 부담은 그대로였던 반면 근로자가 내는 세금은 10조원 이상 증가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명박정부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747공약(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선진국 진입)은 4대강의 ‘녹색물’에 오래전에 잠겼다. 이명박정부 첫 경제수장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말 원 없이 돈을 썼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재정을 투입했지만, 경제는 뒷걸음쳤고 재정건전성은 악화됐다. 지난 10년간 보수정부 시절의 경제는 장밋빛 환상뿐이었다. 문재인정부는 이를 의식해서인지 중장기 목표 경제성장률을 제시하지 않는 등 ‘숫자’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신 ‘착한 성장’으로 우리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보여준 ‘김동연 호’의 정책 색깔은 과거 10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 부총리는 취임 당시 ‘킹핀론’을 설파했다. 그는 우리 경제를 볼링 게임으로 비유하면서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킹핀’인 저성장을 쓰러뜨려 2·3번 핀인 청년실업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가 쓰러뜨리겠다던 저성장, 청년실업, 저출산의 핀은 오히려 더 꼿꼿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주요국과 세계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일제히 올린 반면 한국의 성장률 전망(3.0%)은 동결했다. 청년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 있고,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역대 최저치인 1.05로 떨어졌다.

김 부총리는 최악의 지표가 나올 때마다 긴급회의를 열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15일 발표된 청년일자리 대책에서 보듯 특단의 대책보다는 과거의 정책과 다를 바 없는 ‘재탕 삼탕 대책’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1호 정책’이었던 11조원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에도, 그는 이번에도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단기적 해결책에 매달리고 있다.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스타일도 여전하다. 김 부총리가 기재부 국장 시절 하급자가 그의 지시를 따라 대책을 만들다 보니 100개가 넘었는데, 결국 제일 처음 만든 1번이 채택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최근 몇 달간 사회적 경제 활성화, 서비스업 활성화 등 수십 개의 정책을 쏟아냈다. 기재부 내 간부들 사이에서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억에 남을만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GM 사태, 조선업 구조조정, 통상 마찰 현안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해냈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자신이 숟가락 얹을 때와 아닐 때를 가리는 데 열중한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점은 지난 10년간의 잘못된 정책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김 부총리를 포함한 경제부처 관료들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김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 ‘양치기 정부’의 악명을 끊어야 하는 이유다. 국민들은 그동안 너무 많이 속아 왔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