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베짱이 농부네 예술창고’라는 갤러리에서 ‘고라니가 키우는 콩밭’이란 제목으로 열린 박미화 작가의 전시였다. 전시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산 사람은 초등학교 4학년 혜인양이었다. “엄마, 나 저 그림 살래. 맡겨둔 세뱃돈 12만원 주세요.”
미술품을 사는 것은 어떤 일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다룬 책이 나왔다. 평범한 월급쟁이에게 미술품 수집가의 길을 안내하는 이 책은 국민일보에서 오랫동안 미술담당을 해 온 손영옥 기자가 썼다. 기자의 책답게 쉽고 간결하다. “(혜인양 사례처럼) 마음이 가는 것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순수한 열망과 용기, 그게 컬렉터의 첫걸음 아닐까.” 수집가의 길로 인도하는 첫걸음이 산뜻하다.
미술품을 사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책은 성공한 컬렉터들의 노하우도 소개한다. 2003년 독일의 한 화랑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작품을 산 대학원생 A씨의 사례는 특히 솔깃하게 한다. A씨가 4000만원으로 산 그 그림은 15년 뒤 평가액이 15억∼17억원으로 올랐다. 어림잡아 40배 정도 뛴 셈이다. A씨가 ‘돈 되는’ 그림을 발견하는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은 부모가 컬렉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림을 알면, 돈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78세에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연히 들른 화랑에서 낯선 작가의 초대전을 보다 그가 산 그림은 손상기 작가의 ‘추(秋)-호숫가’였다. 그의 감상이다. “(나중에) 비싸게 팔았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30년을 그 그림과 함께 있으면서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림과 같이 있으면서 작가에 대해 생각하고 글도 쓰고. 결과적으로 제 삶이 굉장히 풍요롭게 변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미술품을 사는 게 투자 가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친 어느 날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위로를 주기도 한다. 한눈에 반해서 산 그림이라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키다리 아저씨가 된 기분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젊은 예술가에게 격려와 후원이 된다면. 생애 첫 구매한 작품은 모든 가능성을 품은 씨앗이다.”
김인선 스페이스 월링앤딜링 대표는 “미술품 구입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넘어 컬렉션 자체가 작가들의 활동을 독려하는 또 하나의 예술 행위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책과 길] 미술품을 산다는 건 일석삼조의 예술행위
입력 2018-03-16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