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 형과 미술판 동생, 손잡고 남북문제를 짚다

입력 2018-03-15 05:05
‘파킹찬스’라는 이름으로 2010년부터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형 박찬욱 영화감독(오른쪽)과 동생 박찬경 현대미술작가. 박찬경은 14일 사이가 좋으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아휴, 형이 결혼하기 전까지 한방을 썼는데요, 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신작 ‘반신반의’(위)와 2017년 작 ‘격세지감’의 한 장면.
공동 작업 그룹명 ‘파킹찬스’ 성씨 ‘박’·돌림자 ‘찬’서 착안
형, 장르 영화 흥행 부담 덜고 동생 대중성 추구할 때 뭉쳐
둘의 첫 영화 ‘파란만장’ 부터 ‘…JSA’ 패러디한 ‘격세지감’ 신작 ‘반신반의’까지 한자리


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급물살을 탄 탓에 ‘파킹찬스’(PARKing CHANce)의 신작 영상 ‘반신반의’를 본다면 생뚱맞다는 느낌까지 받을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이 곧 열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연이어 만나는 분단 이래 최고의 화해 무드 속에 이중 스파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니. 이거야말로 전작의 제목처럼 ‘격세지감’이 들지 모르겠다.

‘파킹찬스’는 영화감독 박찬욱(55)과 현대미술작가 박찬경(53) 형제가 공동 작업을 할 때 쓰는 그룹명이다. 성이 박(PARK), 돌림자가 찬(CHAN)이라는 것에 착안했다. 벌써 8년째가 된 형제의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회고전 ‘파킹찬스 2010-2018’전이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사전 공개 행사에 다녀왔다.

전시엔 둘의 첫 작품 ‘파란만장’(2011)을 시작으로 판소리 스승과 제자의 하루를 그린 ‘청출어람’(2013), 서울을 주제로 한 크라우드소싱(대중을 창작물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식) 다큐 ‘고진감래’(2013), 뮤직비디오 ‘V’(2103),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를 패러디한 ‘격세지감’(2017), 그리고 신작 ‘반신반의’(2018)까지 총출동했다.

주제는 죽음 전통 도시 남북문제를 종횡한다. 유독 되풀이되는 게 남북문제이다.

박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JSA’가 형에겐 중요하고 대중에게도 많이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저야 아주 오랫동안 1990년대부터 남북관계를 다룬 작품을 많이 해 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형 박찬욱은 영국 BBC와의 협업 때문에 출장 중이라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관람객들이 가장 반가워할 작품은 ‘격세지감’일 것 같다. 흥행몰이를 했던 영화 ‘JSA’ 세트장을 활용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두 영화는 제작 및 상영 시점이 중요하다. ‘JSA’(2000) 상영 당시 남북관계는 전례 없이 화해 분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격세지감’이 만들어진 2017년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유령의 집처럼 변한 ‘JSA’ 영화 세트장의 현재 영상에 과거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게 낯설다.

이중스파이를 다룬 신작 ‘반신반의’ 역시 북한의 핵 개발로 위기감이 고조됐던 지난해 9월 이후 제작됐다. 혹독한 겨울, 두만강을 건너온 젊은 여성이 남한에서 ‘팟캐스트’로 북한의 삶을 전하기도 하지만 다시 북으로 소환된다. 또한 남한의 남자 선교사도 남과 북을 오간다. 국제정세가 호전되며 결과적으론 냉전의 분위기가 감도는 신작 ‘반신반의’도 격세지감이 들게 됐다.

그러나 분단이 갖는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지적해온 두 사람의 작업 철학을 환기하면, 어쩌면 영화판에서, 미술판에서 분투해온 형제의 노력이 거름으로 깔려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형제는 왜 뭉쳤을까. 장르와 이윤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하는 건 서울 도심에서 주차하기만큼 어렵지만 둘이 뭉쳐 기회(CHNACE)를 만들어내 보자는 희망이 담겼다.

박찬경은 “형 입장에선 규모는 작지만 흥행에 성공해야하는 장르 영화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 좀 더 대중적인 걸 하고 싶을 때 형과 작업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이 갖는 대중성, 현대미술작가가 갖는 난해함의 중간접점이 파킹찬스라는 그룹명으로 하는 작품세계인 것이다. 특히 박찬경의 입장에선 대사와 스토리가 있는 극영화의 문법을 따르며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다.

대중에겐 아주 어렵지 않으면서도 미술적 색채와 상징적 언어가 풍부해 매혹적이다. ‘반신반의’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 세트장인 두 개의 네모 방, 그리고 그 사이의 복도는 남과 북, 비무장지대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여성이 북으로 소환될 때 복도는 갑자기 물이 차오른다. 그리고 취조실에서 비현실적으로 차오르는 물….

미술과 영화 사이에서 스릴 넘치는 줄타기를 하는 파킹찬스 형제의 실험적인 예술영화 세계로 초대하는 전시다.

광주=손영옥 선임기자 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