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어 못한다는 타박을 들을까봐 몰라도 알아듣는 척하는데 일본은 아니에요. ‘무슨 뜻이냐’며 끈질기게 물어봅니다.”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관계자는 협상 테이블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국가는 어려움을 겪는 게 당연한데 양국의 통상관료들이 협상에서 보인 행태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실한 통상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릴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문에 서명하기 직전 미국과 관계가 돈독한 캐나다, 호주와 공동 전선을 구축해 미국을 압박했다. 그 결과 두 나라는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남은 건 일본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조만간 일본도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출범을 주도해 세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CPTPP 가입 의사를 밝혔다.
인적 네트워크 관리도 차이를 보였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움직이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평상시에도 네트워크를 관리했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연차보고서에 올라온 기부자 명단을 보면 도요타, 전일본공수(ANA), 미쓰비시그룹, 니혼게이자이신문, 혼다,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대표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장관 지명 당시 브루킹스연구소 이사였다.
우리나라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인맥에만 의존해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본부장도 최근 사임한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는 친분이 있지만 백악관 경제 실세인 피터 나바로 보좌관이나 로스 장관 등과의 관계는 취약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12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와 관련해 외교, 안보 등 가용 채널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세종=서윤경 산업부 기자 27k@kmib.co.kr
[현장기자-서윤경] 영어 못 알아들어도 아는 척… 믿지못할 한국 통상 협상력
입력 2018-03-12 18:44 수정 2018-03-12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