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위력 간음·추행, 결국 당사자 진술의 ‘신빙성’ 싸움

입력 2018-03-13 05:02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성범죄 특성상 직접적·객관적 물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 수사기관과 법정에선 당사자 진술의 신빙성이 주요 판단 근거가 된다.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는지, 그 진술이 객관적 상황과 부합하는지 등으로도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 카카오톡 메시지 등 사건 전후의 정황과 당사자 발언 등이 담긴 기록이 남아 있다면 유죄 판단에 큰 도움이 된다.

2016년 여직원을 차량 안에서 성폭행한 혐의(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로 재판에 넘겨진 자영업자 A씨에게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여직원이 입고 있던 스키니진을 차량 안에서 강제로 벗기기 힘든 점, 성관계 후 ‘잘 들어갔느냐’는 A씨 문자에 여직원이 ‘네’라고 답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2심은 이와 반대로 ‘안정 잘 취해라. 못난 놈이 부탁한다. 무릎 꿇고 사죄할 기회 좀 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들어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고 봤다.

안희정(사진) 전 충남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김지은씨가 공개한 텔레그램에도 이와 비슷한 정황이 드러난다. 안 전 지사는 김씨에게 ‘괘념치 마라’ ‘미안하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김씨의 답장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수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상대방이 답장을 보내지 않는데 계속해서 사과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성범죄 사건에서 가해자가 보여주는 전형적 태도”라고 분석했다.

겉으로 드러난 카카오톡 대화 내용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연예기획사 대표가 연습생을 성추행한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서로 주고받은 대화 내용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이후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는 남녀 사이에 쉽게 하기 힘든 노골적 표현이 있는데도 추행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등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가수지망생인 피해자는 소문이 두려워 추행 사실을 항의하지 못했다”며 “카카오톡 메시지에 추행을 항의하는 내용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이가현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