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엔 “韓정부 성폭력 근절의지 안보여… 7년전 그대로”

입력 2018-03-12 20:45
루스 핼퍼린-카다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부의장. CEDAW 제공

2011년 처음 한국문제 관여… 7년 전 지적, 지금도 그대로 변화 전혀 없는 나라로 각인
미투는 격변기 세계적 흐름 ‘성폭력 없는 세상’ 위한 진통… 반격 여론에 휘둘려선 안돼

루스 핼퍼린-카다리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부의장은 여성 문제에 있어 한국을 ‘변화 없는 나라’로 평가했다. 성폭력 실태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의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미투(#MeToo) 운동’에 대한 반격의 일종으로 무고죄나 명예훼손죄 언급이 늘어나는 것 역시 한국 고유의 현상이라고 성토했다.

카다리 부의장은 1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및 이메일 인터뷰에서 “성폭력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의지이지만 7년 전 CEDAW에서 지적했던 내용이 (지금까지도) 거의 반영되지 않은 걸 보고 한국 정부에 의지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카다리 부의장은 12년째 CEDAW 위원직을 맡아 왔고, 가입국 여성 인권 실태를 점검하는 국가보고서 심의에 참여해 한국의 여성 문제를 지켜봤다.

카다리 부의장은 2011년 7차 심의 당시 한국을 ‘가부장적 관습과 제도가 남아 있는 국가’로 판단했고 최종 권고안에도 한국의 남성 중심적 문화가 낳은 성폭력 실태를 지적하는 쓴소리를 냈다. 지난달 제8차 국가보고서 심의(국민일보 3월 1일자 1면 참조)를 위해 다시 한국 정부를 마주했을 때 어느 정도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한국의 여성 인권은 7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게 카다리 부의장 생각이다.

카다리 부의장은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이 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사법 시스템은 여전히 가해자들 편을 들고 있다”며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성관계 이력을 묻는 등 불합리한 관행이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한국에서 나타난 미투 운동에 대한 반격(backlash) 현상도 언급했다. 그는 “미투 운동 이후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모습은 한국의 독특한 현상”이라며 “이런 사례를 본 적이 없고 이게 얼마나 강력한 전략인지 정부가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스라엘 바르일란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미투가 ‘무법지대’ ‘인민재판’ 등의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카다리 부의장은 “무죄추정 원칙은 중요하다. 미투를 악용하려 드는 거짓 폭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건전한 비판과 미투를 끌어내리려는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반격 현상이 결국 남성의 헤게모니를 지키려는 반발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도 했다

카다리 부의장은 영화배우 조민기씨 사례처럼 두 달 전 이스라엘에서 유명 예술고등학교 교사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일부 여론이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던 사실도 언급했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 미투가 휘둘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카다리 부의장은 “지금은 권력관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대격변의 시기”라며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고 했다. 피해자 탓을 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며 “여성들이 치러온 끔찍한 대가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직언했다. 한국 여성들을 향해서는 “몇 년 후 지금을 돌이켜봤을 때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응원한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