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연출 연극 ‘모래시계’ 공연 취소 지원금 회수
조재현 공연 제작사 폐업 수순… 윤호진 뮤지컬 ‘웬즈데이’ 중단
삼총사·맨 오브 라만차 캐릭터 ·대본 수정 삭제 논의… 연희단거리패도 해체 선언
공연계가 달라지고 있다. 주요 인사들이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공연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공연이 취소되거나 내용이 수정되기도 하고 심지어 극단이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미투 운동은 일회성 조치가 아니라 공연계 제작문화 전반을 겨냥하는 수준으로 확장 중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최근 성추행 의혹을 받는 오태석 연출가가 운영하는 극단 목화의 연극 ‘모래시계’를 취소하고 공연 제작을 위한 지원금 1억원도 사용금액을 제외하고 회수한다고 밝혔다. 모래시계는 예술위의 지원 사업인 ‘공연예술 창작산실’ 연극 부문에 선정돼 오는 15∼25일 무대에 오를 계획이었다.
배우 조재현의 공연 제작사 수현재컴퍼니는 폐업 수순에 들어간다. 조재현은 앞서 사과문을 통해 “모든 걸 내려놓겠다”라고 밝혔다. 수현재컴퍼니는 현재 진행 중인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와 연극 ‘에쿠우스’가 끝나는 다음 달 말 이후 문을 닫을 예정이다.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뮤지컬 ‘웬즈데이’도 제작 중단됐다. 에이콤 관계자는 “현재 웬즈데이 제작과 관련된 모든 일은 중단됐다”며 “예술의전당 대관도 취소했다”라고 밝혔다. 웬즈데이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과 그들과 함께 싸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오는 16일 개막하는 뮤지컬 ‘삼총사’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캐릭터를 수정했다. 왕용범 연출가는 인터뷰에서 극 중 호색한 포르토스 성격에 변화를 줬다고 밝혔다. 왕 연출가는 “공연은 판타지라고 해도 사회의 거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투 전부터 사회상을 반영해 인물의 캐릭터가 바뀌어왔다”며 “여자를 밝히는 마초를 남자답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 다른 면을 부각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달 12일 시작하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여주인공 알돈자가 남성 5명에게 성폭행당하는 장면의 삭제를 논의 중이다.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 관계자는 “전부터 해당 장면을 불편하게 느끼는 관객들이 많아 장면을 수정하려고 논의했다”며 “미투 분위기가 맞물리다 보니 변화의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성폭행 논란에 휩싸였던 이윤택 연출가가 이끌던 극단 연희단거리패도 창단 32년 만에 불명예 해체하기로 선언했다. 경남 밀양시에 위치한 밀양연극촌도 이사장으로 있던 이 연출가에 이어 인간문화재 하용부 촌장까지 성폭행 의혹을 받으면서 19년 만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연희단거리패와 밀양연극촌은 한때 공동체주의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연극 공동체를 표방했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삼는 공연을 관객이 불편해해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무의식적으로 깔린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계기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그렇다고 여성의 부조리한 삶을 표현하는 공연이 금기되고 예술가가 자기검열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건 문제”라며 “젠더가 아닌 섹스의 문제로 왜곡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미투’가 공연계에 미친 파장… 공연 취소·수정, 인물 변화
입력 2018-03-12 19:34 수정 2018-03-13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