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좋은 예식장, 바가지에 예약 별따기… 값싼 공공기관은 활용 안돼

입력 2018-03-13 05:00

평균 예식 비용 1617만원… 그나마 수개월 전 예약해야
법원서도 결혼식 가능 법조인이나 가족에 한정

서울 동작구에 사는 정모(32)씨는 지난달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토요일 점심시간대로 예식과 식사가 동시에 되는 곳을 찾아봤더니 가장 이른 날짜가 9월이었다. 7개월 전에 예약했지만 할인 혜택도 없다. 최소 인원 400명이라는 전제조건 하에 식대만 인당 5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시설 대여료는 별도다. 비용은 예상했던 2000만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결혼하려면 첫 단추부터 경제적 난관에 부딪힌다. 웨딩컨설팅업체 듀오웨드가 최근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결혼비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균 예식 비용은 1617만원이었다. 주택 구입비용을 빼고 가장 높았다. 비용뿐 아니라 정씨처럼 수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야 하는 수고도 필요하다. 경제적 부담은 혼인 건수가 줄어드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6만4500건으로 2011년(32만9000건) 이후 6년째 내리막이다.

예식장이 부족해서냐면 그렇지도 않다. 12일 국세청의 ‘사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예식장 수는 1032곳이다. 지난해 혼인 건수를 대입한다면 산술적으로 1곳 당 연간 256건 정도의 결혼식을 소화할 수 있다. 주말에만 결혼한다고 전제해도 하루 2.5건 정도 예식을 치를 수 있다. 195곳의 예식장이 있는 서울도 지난해 혼인 건수(5만3800건)를 고려하면 하루 2.7건 정도의 예식이 가능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교회, 성당, 본사 사옥 등을 활용한 결혼식까지 고려한다면 일평균 예식 건수는 더 줄어든다.

비싼 돈을 들이면서도 수개월씩 기다리는 상황이 이어지는 이유는 결혼식이 가진 특수성이 한몫한다. 누구나 원하는 바가 비슷하다. 위치나 시설, 좋은 시간대를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다. 그나마 정씨처럼 여유가 있는 이들은 나은 편이다. 초대할 하객과 자산이 적은 이른바 ‘흙수저’ 커플이라면 만족할 만한 첫 출발은 포기해야 한다.

반면 예식장 부담이 적은 이들도 있다. 법조인을 가족으로 둔 이모(33)씨는 최근 서울고등법원 예식장에서 예식을 올렸다. 교통 요지인 서울 강남에 위치한데다 식비도 일반 예식장보다 저렴했다. 예식 최소인원 규정도 없이 온 하객만큼 식대를 지불했다. 이 예식장은 법조인이나 그 가족 또는 법원 공무원만 이용할 수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간부회의를 통해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특단의 대책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자신한 저출산 대책은 이르면 이달 중 발표된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 값비싼 결혼식에 대한 해법은 빠진다. 338곳의 공공기관을 포함, 전국 요지에 위치한 공공시설의 활용 대책이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기재부 관계자는 “고려조차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