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 ‘패싱’ 우려 막아라… 중·일·러 설득 ‘외교 대장정’

입력 2018-03-13 05:05 수정 2018-03-13 18:01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왼쪽)와 함께 12일 베이징 조어대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대북특사단장이었던 정 실장은 양 국무위원에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 및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눈 얘기를 전하고 중국의 협조를 구했다. AP뉴시스

中 참여 이끌어내고
북한이 제시한 체제 보장 등 中 협력 없이는 실현 어려워
정의용 실장, 시진핑 만나 비핵화 위한 中 고유 역할 강조

日 어깃장 놓지 않게
日, 6자회담서도 북핵보다는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에 관심
북핵 대화 흐름에 역행 않도록 한미일 틀 속에 묶어두기 주력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한 한국 정부가 주변국을 상대로 북핵 외교 2라운드에 돌입했다.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흘러가면서 불거진 각국 내 ‘패싱’ 우려를 불식하는 게 급선무다. 최근 북핵 문제에 손을 놓다시피 한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이따금 어깃장을 놓던 일본이 판을 깨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을 짠 뒤 남북·미·중 4자 회담, 일본·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으로 점차 논의의 틀을 넓혀가는 구상을 갖고 있다. 지금은 이런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느슨해진 협력 관계를 조이는 단계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12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하루 만에 각각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로 급파된 것도 이런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체제 안전 보장과 군사적 위협 해소는 중국의 협력 없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의 궁극적 요구 사항인 평화 체제 구축은 북·미 양자 회담만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정 실장은 이날 오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북·미 정상회담 배경과 향후 계획을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북·미 직접 대화에도 불구하고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고유한 역할에는 변함이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서 원장이 들고 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비공개 대일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대북 압박 과정에서 미국과의 찰떡 공조를 과시해왔다. 6자회담에서도 북핵보다는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전격적인 북·미 대화 흐름에 ‘재팬 패싱’(일본 배제) 우려가 크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특별히 당부했다”며 “북·미 정상회담에서 확실하게 다룰 수 있도록 긴밀히 연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외교소식통은 “일본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북·미 대화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잡음이 날 수도 있다”며 “일이 잘 풀릴수록 스포일러(Spoiler·방해꾼)를 없애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일본은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경우 합의 이행과 검증, 대북 경제 지원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일본이 북핵 대화 흐름에 역행하지 않도록 ‘한·미·일’ 3자 공조 체제를 적극 활용할 구상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사이 북한과의 접촉면을 넓혀왔다.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관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모두 장기집권 체제에 들어섰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핵심 관련국의 정권 교체라는 변수가 사라진 셈이어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안정적인 환경은 조성됐다는 평가다.

권지혜 조효석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