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확산되면서 본말이 전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미투는 진보나 보수 어느 한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침묵해 왔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 이후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도덕적 잣대가 높아진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러한 사회변화에 여전히 둔감하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정치인들은 부인하는데 급급하고 소속 정당은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만 열심이다. 상대 진영도 정쟁 대상으로 삼을 뿐 법적·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3선의 민병두 의원이 성추행 의혹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하자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사퇴를 만류했다. 민 의원이 12일 사퇴서를 제출했는데도 사실 관계를 규명한 후 수용할지 반려할지 정하겠다고 한다. 성추문이 불거져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사람을 굳이 붙잡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미투 폭로로 많은 저명 인사들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회의원도 예외일 수 없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민주당은 여성당직자 특혜공천과 불륜 의혹이 제기된 박수현 충남지사 예비후보에 대해선 자진사퇴를 권유하기로 했다. 민 의원에 대해선 “사실 관계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더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건이나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불거진 뒤 민주당이 보인 대응과도 대비된다. 민 의원이 사퇴할 경우 지방선거에서 1당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만류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주당이 정말 그런 생각에서 민 의원을 붙잡으려 한다면 민심을 한참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근거 없는 음모론이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심각한 문제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이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가리면 된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미투 공작론’을 또 제기했다. 미투의 본질을 훼손하는 발언이자 피해자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안 전 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피해자가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2차 피해를 호소했을까.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이 뿌리내려 사회변화로 이어지려면 아직 멀었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법적 장치가 시급하다. 사실관계를 밝혀도 명예훼손죄로 역고소당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성폭력 피해사실을 말하는 경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대상에서 제외하는 입법안을 발의했는데 적극 추진해야 한다.
[사설] 미투, 갈 길 멀었다
입력 2018-03-12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