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반 로봇이 자산관리를 돕고, 문자메시지 하나로 송금할 수 있다. 영업점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이용하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0.1% 포인트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 비대면 상품을 꼼꼼히 따져보는 고객도 늘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흐름에 맞춰 은행도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구시대의 유물’이 남아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까지 상당수 시중은행에서 ‘계장’ ‘부부장’ 같은 잘게 쪼개진 직위·직급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산업계에서 직무 단순화 차원에서 직급·직책을 줄이는 움직임과 차이를 보인다. 은행들은 연공서열이나 호봉제 기반의 임금구조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생긴 인사적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직위가 필요하다. 복잡한 직위 체계는 느린 의사결정 구조, 인건비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도 받는다.
창구영업직군(텔러)과 일반직군의 직위 체계가 달라 외부에서 보기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 때문에 KB국민은행은 2013년 말에 텔러직군과 일반직군을 통합해 ‘L0∼L4’의 5개 직급(세부적으로는 9개 직급)을 만들었다.
‘승진시험’도 은행권의 유물로 꼽힌다. KEB하나은행과 IBK기업은행에서는 책임자급인 과장이 되려면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은행의 주요 업무인 ‘여신’ ‘수신’ ‘외환’ 등 시험과목에서 기준점수를 넘게 받아야만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입사 후 5년(군필 남성 직원은 3년) 만에 시험을 통과하면 책임자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임용고시’가 있다. 20대에 과장으로 승진하는 게 가능하다. 그만큼 경쟁률도 세다. 보통 1000명가량 응시하는데 합격자는 채 100명이 되지 않는다.
이 제도는 올해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노사는 시험만으로 승진을 결정하는 건 낡은 방식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시험 준비를 하느라 업무에 지장을 받는 등 부작용이 있다는 비판도 영향을 미쳤다. NH농협은행은 과장 승진 자격시험인 ‘자격고시’도 폐지하고 내년부터 인사평가로 승진 인사를 한다.
또 은행권에는 여직원만 입는 유니폼이 있다. 국민·신한·KEB하나·우리·기업·농협은행은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대리급 이하 여성 직원에게 의무적으로 유니폼을 입도록 하고 있다. 남성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유니폼 규정은 없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원은 신뢰감을 줘야 하기 때문에 단정한 복장을 입을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통일성 있는 남성 정장보다 여성 정장은 다양하기 때문에 유니폼으로 통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근 복장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 편하고, 경제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여성에게만 유니폼을 강요하는 규정이 있다는 점은 시대착오적이고, 여성을 하급직원으로 취급하게 만든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 시중은행 직원 A씨는 “카드, 증권, 보험 등 다른 금융권에선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유니폼이 은행에만 남아 있다”며 “고객 중에 유니폼 입은 여직원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은행이 못버린 ‘구시대 유물’ 셋… 유니폼·승진시험·직급
입력 2018-03-12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