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강준영] 들뜨지 말아야 할 이유

입력 2018-03-11 17:52

미국과 북한의 극한 대립 속에서 지난해 말까지 한치 앞을 볼 수 없었던 한반도에서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노력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남북대화 재개 의사로 시작된 이 변화는 정부의 대북 특사단 방북을 통해 비핵화 논의와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포함된 6개항 합의로 이어졌다. 특사단의 방미로 초유의 미·북 정상회담까지 가시권에 들어오는 성과를 거뒀다. 2개월 전까지 미국의 대북 군사 타격이 우려되던 상황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실로 극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대북 압박과 제재, 한반도 전쟁 불가론과 평화 정착을 위한 ‘운전자론’을 강조하면서 대북 평화 메시지를 보낸 한국의 외교적 노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미·북 간 논의 없이 북핵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상황 인식하에, 미국과의 대화를 원하는 북한 정권과 대북 군사 행동 전개에 부담이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틈새를 파고들어 북·미 회담 중재에 초점을 맞춘 외교 전략도 주효했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시작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제기하는 ‘비핵화 논의’를 제시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하는 강수를 두었다. 사실 이 ‘통 큰 결단’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미국의 압박과 제재가 계속되고 중국과의 사이마저 악화되면 내부적 통치 안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러브콜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이미 핵 능력 체계도 어느 정도 완성된 상황이고,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김정은은 핵보유국 북한의 지도자로 국제사회에 데뷔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내부적으로도 정상국가 북한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추구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 정상회담 수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미국이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모를 리 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항구적 비핵화 달성이 김 위원장과 만나는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가 북·미 정상회담의 목표이자 조건이라는 뜻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9일 북한의 구체적 조치와 구체적 행동을 보지 않고는 만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핵 동결’을 넘어서는 ‘보다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 우리는 별로 강조하지 않지만 미국의 핵심 관심사인 북한의 인권문제 개선도 회담 성사의 걸림돌이다.

사실 북한 비핵화에 관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에 철저히 속아왔다. 1994년 제네바 합의부터 2005년 9·19 공동선언,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 2012년 2·29 합의 등 수많은 북핵 합의는 이행되지 못했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개념이 한·미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여전히 핵보유국 지위를 견지하고 있다. 군사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비핵화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 미국에 대해 대북제재 철회와 외교적 관계 정상화는 물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철저한 검증 수용을 요구할 것이다. 결국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회담부터 서로 다른 비핵화 개념이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는 분명히 기회다. 대통령 말대로 ‘유리그릇’ 다루듯 다뤄야 한다. 국내적 공감대 확보와 국제사회 및 주변국들의 움직임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은 압박 기조의 지속을 천명하고 있고, 일본은 재팬 패싱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효과라며 외교적 해결 추진에 안도하는 모양새다. 러시아도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합의 이행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종국적 비핵화를 위한 진짜 중재는 이제 시작이다. 지나친 흥분과 감성적 대북 접근은 절대 금물이다.

강준영 중국정치경제학 한국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