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단이 발표문 작성하는 동안 트럼프, 브리핑룸 취임후 첫 발길
“한국이 北 관련 중대 발표” 귀띔… 韓 백악관 단독 브리핑 이례적
“직접 만나면 큰 성과 낼 수 있다” 김정은 메시지 정 실장이 전달
트럼프, 당초에 4월회담 제안… 정의용 실장 중재로 5월 낙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전달받자마자 곧바로 “좋다. 만나겠다”고 수락했다.
곧이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점 얘기가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4월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남북이 먼저 만나는 게 좋다”고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by May)”로 말했다고 한다.
정 실장은 백악관에서 오후 4시15분부터 45분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 실장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만나고 싶다.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했다. 정 실장은 그러면서 “김 위원장을 만나보니 솔직하게 얘기하고 진정성이 느껴졌다”며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만 우리 판단을 미국이 받아주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이 말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백악관 참모들에게 “그것 봐라. 북한과 대화하는 게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측 방미단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면담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방미단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 면담을 9일로 예상했지만 미 백악관 참모들과의 회동 중간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빨리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방미 당일 오벌오피스에서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은 이렇게 이뤄졌다.
정 실장은 집무실 벽난로 앞 의자 2개 왼쪽에 앉아 오른쪽 의자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했다. 두 사람을 가운데 두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등 미국 정부 최고위 인사들이 소파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이 끝난 뒤 정 실장 등 우리 측 방미단이 직접 언론 브리핑을 해줄 것을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탁이 있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한국 대표 자격으로 백악관에서 논의된 내용을 직접 발표해 달라”고 말했다. 정 실장과 서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도 못한 채 맥매스터 보좌관 집무실에서 2시간 동안 발표문을 작성했다. 이들은 발표문 작성이 끝난 뒤에야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시큐리티 라인(Security line)’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브리핑룸을 찾아 문을 살짝 열고 기자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전제 설명)”라며 “한국 정부 관계자가 북한 문제에 대해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브리핑룸을 찾은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백악관 기자실은 순식간에 북새통으로 변했다. 백악관을 떠난 기자들을 다시 부르고, 생중계 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전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하기엔 백악관 브리핑룸이 너무 협소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브리핑이 진행됐다. 우리 정부 인사가 백악관에서 단독 브리핑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정 실장은 예고된 시간을 조금 넘긴 오후 7시11분 서 원장과 조 대사를 대동한 채 역사적인 발표를 했다.
박세환 기자, 워싱턴=전석운 특파원foryou@kmib.co.kr
트럼프, 北 제안 전격 수용 안팎… “북·미 정상회담, 한국이 발표해달라” 깜짝 제안
입력 2018-03-10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