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보호 엄격했던 애플 중국 내 사용자 정보·데이터 넘겨
화웨이 미국 진출 갑자기 무산… CIA “중국산 폰 이용 말라” 경고
한국서도 중국산 통신장비 논란… 유럽·일본 “역내 데이터 보호”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자원 빅데이터 선점 전쟁” 분석 나와
미국과 중국이 각종 개인정보가 담긴 데이터를 놓고 안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상대국 IT 기업이 자국 데이터를 갖지 못하게 서로 견제하는 모습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자원인 데이터를 차지하기 위한 무역전쟁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중국산 통신장비 사용에 따른 보안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CNN 등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애플이 중국 내 사용자들의 개인 정보와 사용 데이터를 중국으로 모두 이전하고 관리 권한도 중국 구이저우 지방 정부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 1억3000만명이 넘는 애플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아이클라우드’ 계정이 중국 국영 서버로 넘어간 것이다. 이제 중국 정부는 직권으로 아이폰 사용자들을 모니터링하고 통화내역·메시지·이메일 등을 검열할 수 있다.
그동안 애플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미국 당국의 테러 수사에도 협력하지 않을 만큼 데이터 관리에 엄격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최대 시장인 중국의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지난 2016년 중국 정부의 규제에 애플이 아이북스와 아이튠스 영화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던 경험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6월 사이버보안법을 개정해 외국 IT 기업들을 향한 압박을 본격화했다. 사이버보안법은 중국 내에서 확보한 데이터는 중국 내에만 보관하도록 의무화해 범죄·테러를 예방하는 법이다. 외국 기업의 중국 내 서비스를 정부가 검열,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얻은 개인정보를 중국 내 서버에 저장해야 하며 국외로 반출하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미국 IT 기업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애플은 중국 앱스토어에서 인터넷 검열시스템을 우회하는 가상사설망(VPN) 관련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앱) 60여 개를 삭제했고,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지난해 11월 중국사업부 자산을 매각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도 자사 데이터를 중국 데이터센터로 옮겼다.
미국 정부도 중국 기업을 상대로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미국 정부의 안보 우려에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화웨이의 미국 시장 진출이 무산된 게 대표적 사례다. 화웨이는 지난 1월 스마트폰을 미국에서 정식 출시한다고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파트너인 미국 통신업체 AT&T가 갑자기 출시를 취소해 진출이 무산됐다.
이어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기관 수장들은 지난달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국민은 화웨이와 ZTE 같은 중국 업체의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 업체들이 통신장비에 ‘백도어’(악성코드)를 심어 데이터를 빼돌릴 것을 우려한 것이다.
화웨이 측은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앞세워 미국 정부가 민간 기업에 압력을 넣었다며 반발했다. 리처드 유 화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국제 전자제품 박람 CES2018 기조연설에서 “세계 3위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 제품을 쓰지 못하면 결국 미국 소비자가 손해를 입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도 같은 달 미국 금융회사 머니그램 인수·합병(M&A)에실패했다. 알리바바는 금융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의 디지털 결제 시장 확대를 위해 1년 동안 머니그램 M&A에 집중했지만 미국 정부가 ‘중국 기업이 미국 국민의 개인정보를 얻었을 때 사이버 공격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오자 진출 포기를 선언했다.
이밖에 미국 육군은 세계 최대 드론 제조사인 중국 DJI의 드론이 수집 정보를 중국 정부에 보고할 수 있다며 사용을 금지했다. 아울러 중국 하이크비전이 만든 감시 카메라를 다른 제조업체의 것으로 교체해 중국 측 반발을 사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두 나라의 데이터 전쟁이 상대국으로 민감한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 안보 차원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은 4차 산업혁명시대 핵심 자원인 빅데이터를 선점하기 위한 무역전쟁의 전초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IT 기업들이 수집한 데이터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원동력이다.
유럽도 역내 데이터 보호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월 중국 국빈방문 중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의 해외 투자 증가에 대응해 유럽연합(EU)이 일관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인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역내 기업의 상업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운영하는 ‘국경 간 프라이버시 규칙(CBPR)’을 채택하기로 했다. CBPR은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평가해 인증하는 시스템이다. 데이터 보호 수준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중국산 통신장비의 보안 논란이 이어져왔다. LG유플러스는 2013년 국내 최초로 화웨이 무선 장비를 도입해 우려를 샀다. 미국 의회가 나서 화웨이 LTE 장비가 주한미군 정보를 유출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LG유플러스는 미군 기지 근처에는 중국산 장비를 쓴 기지국을 두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화웨이 장비를 도입했다.
보안 논란은 국내 이통사들이 5G 통신장비 도입을 준비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화웨이 5G 장비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인 데다 제품 값도 저렴해 이통 3사가 화웨이 장비 채택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화웨이 장비를 써온 LG유플러스는 보안 문제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기자간담회에서 “4G 때부터 보안 문제 때문에 (화웨이 네트워크 장비 도입을 두고) 옥신각신 했는데 실제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보안 문제가 없다고 공식화했다”고 강조했다.
SK텔레콤과 KT도 중국산 통신장비 도입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내년 5G 세계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두 회사는 통신장비 제조사들에게 5G 네트워크 무선 장비 도입에 관한 제안요청서(REP)를 발송했다. REP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노키아, 에릭슨, 시스코뿐만 아니라 중국기업인 화웨이와 ZTE 등에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11일 “중국 통신장비의 보안 위험이 구체적으로 검증된 적은 없다”며 “다만 미국 정부와 국내 소비자가 불안해하기 때문에 이통사로서는 중국산 장비 도입이 부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국민 개인정보 지켜라” 미·중 치열한 ‘안보전쟁’… 한국은?
입력 2018-03-12 05:03 수정 2018-03-12 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