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파격 선택’ 배경… “북핵 위기 해결은 내 몫” 승부사 기질 작용

입력 2018-03-09 18:35 수정 2018-03-09 21:32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메시지를 설명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요청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수락 의사를 밝혔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며 설득” 유세 중 발언이 현실화 눈앞
틸러슨 “트럼프가 직접 결정” 북핵 위기 해결 주역 떠올라
핵심인 ‘비핵화’ 검증 만만찮아… IAEA ‘완전한 사찰’ 없이 불가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6 대선 유세 과정에서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실천하게 됐다. 어쩌면 본인도 당시에는 이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대선 후보 당시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대화를 거론하면서도 “내가 북한에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5월까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밝혀 단번에 북핵 위기 해결의 주역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최근까지도 “북한과의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비핵화 등 ‘적절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비롯해 대화파를 잘라내고 강경파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분명한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미국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미 의회에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중국과 러시아도 그동안 미국의 대화 의지가 낮다고 봤다. 그런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기로 한 것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깬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파격적인 선택을 한 것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것은 자신이 주도한 대북 압박 정책의 승리로 규정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대화 테이블로 나온 북한을 자신이 직접 상대해서 북핵 위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지부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결정했다”면서 “대통령과 그 결정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운 대화를 했다”고 밝혔다. 또 “정상회담 준비에 몇 주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측근들이 잇따라 백악관을 떠나거나, 행동의 제약을 받는 상태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돌파구가 될 수 있는 큰 호재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미 정상회담만으로도 북핵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라는 인식과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해도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북·미 수교, 억류된 미국인 석방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북·미가 오랫동안 아무 접촉이 없었던 데다 사전 준비시간도 촉박해 자칫 알맹이 없는 만남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핵심은 비핵화다. 북한의 비핵화를 어떻게 관철하고 검증하느냐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해도 이를 입증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북한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비롯해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비핵화를 약속했다. 문제는 실천이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원한다.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려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외부 기관이 북한에 들어가 모든 핵·미사일 시설을 사찰해야 한다. 폐쇄적인 북한 체제상 모든 핵 시설이 공개될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핵물질 생산 중단과 기존 재처리물질 폐기 등 절차도 만만치 않다.

북한이 바라는 유엔 제재 완화와 경제적 지원을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미국은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제재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협상이 진행되면서 단계적 제재 완화가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유엔을 설득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일본 등 일부 국가들이 반대할 수도 있다.

평화협정 체결도 지난한 작업이다. 65년간 지속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평화협정을 북·미 간 양자협정으로 할지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EU)까지 아우르는 다자협정으로 할지에 따라 협상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두 정상이 5월에 만나도 사진만 찍고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