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전례 없는 ‘톱 다운’(Top-down, 위로부터) 외교가 펼쳐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과거 북핵 6자회담 같은 실무논의 대신 특사와 핫라인을 활용한 외교 속도전에 돌입했다. 각 정상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지금 상황은 실무논의 차원의 외교 문법을 대입하기 어렵다”며 “바텀 업(Bottom-up, 아래로부터) 방식에서 벗어나 남·북·미 정상 차원에서 예측 불가능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보 상황은 올해 들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만 해도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이 계속 제기돼 왔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계기로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과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담은 김 위원장의 지난 1월 신년사가 맞아떨어지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특사로 내려보냈다. 이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은 미 행정부 2인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고위급 대표단으로 파견했다. 문 대통령은 두 사람과 모두 면담하고 북·미 대화를 위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른바 ‘중재 외교’로 ‘펜스-김여정 회동’은 성사 직전까지 갔다.
북한은 올림픽 폐회식에도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파견했다.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이 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한국으로 보냈다. 문 대통령은 다시 이들을 각각 면담하고 후속 논의를 이어갔다.
북·미 최고위급 인사와 각각 두 차례 면담한 문 대통령은 각각 외교안보·정보 라인 최고 책임자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대북 특사로 파견했다. 김 위원장은 직접 특사단에게 북·미 대화 및 비핵화 구상을 전달했고, 정 실장과 서 원장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그 자리에서 5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약속했다. 세 정상이 모두 자신의 ‘복심’을 보내 정세를 논의한 뒤 내린 결단들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앞으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이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향후 상황이 급변할 것”이라며 “당국 차원에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어느 수준의 논의가 이뤄질지도 가늠하기 힘들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南-北-美, 전례 없는 ‘톱 다운 북핵 외교’
입력 2018-03-1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