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조속한 만남을 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 성사된다면 북한 지도자와 미국 현직 대통령의 사상 첫 만남으로 기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회동은 한반도 평화를 이뤄낼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말의 전쟁을 넘어 실제적인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북·미 관계가 정상화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어 한반도 정세가 급속하게 대화 국면으로 진입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카드는 예상을 넘어선 파격이다. 과거와 달리 조건도 달지 않았다.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이후 강력하게 숨통을 조여 오는 대북제재를 의식한 행보로 분석된다. 정상적 무역이 모두 차단되면서 적지 않은 경제적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회담에서 지렛대로 쓸 수 있는 상당한 수준의 핵·미사일 능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있다. 핵 고도화를 위한 시간끌기용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그러기에 김 위원장의 제안을 현재로선 100% 신뢰하기 어렵다. 북한의 의중을 정확히 분석하는 게 시급하다.
정상회담에 앞서 탐색전 성격의 실무 접촉이 전개될 것이다. 장소와 시기 등 외형도 중요하지만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시각차는 상존한다. 북한은 핵 동결을 전제로 한 군축회담을,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회담을 원한다. 북한이 수십년 동안 합의를 여러 차례 파기한 전력이 있는 만큼 경계의 끈을 늦출 수 없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김 위원장이 먼저 진정성을 보여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담은 로드맵을 내놓는 게 회담 성사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ICBM 폐기는 물론 북한 내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검증 절차도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김정은 체제의 안전도 위협받는 국면이 전개될지 모른다.
북한을 상대로 2개의 정상회담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한·미의 철저하고도 정교한 공조는 필수다.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이 제기할 수 있는 모든 현안에 대해 조율을 거친 뒤 회담에 임해야 한다. 북한이 말이 아닌 구체적 행동으로 비핵화를 보여줄 때까지 압박과 제재가 계속돼야 하는 건 당연하다. 북핵 문제가 두 차례 정상회담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긴 호흡을 갖고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주변국들의 협조도 절실하기에 입체적 외교전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군사옵션을 배제하고 전향적인 자세로 회담에 임하길 기대한다.
[사설] 김정은이 비핵화 로드맵 먼저 제시해야
입력 2018-03-09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