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꽃제비’ 최광혁 “절대 지고서는 좋은 기분 안난다”

입력 2018-03-10 05:00
평창패럴림픽 아이스슬레지하키 국가대표 최광혁 선수가 1일 경기도 부천 도당근린공원에서 인터뷰 중 결연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부천=최현규 기자
‘링크 위에서 마음껏 뛸 수 있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등 패럴림픽 출전 의미·철학 드러내

사고로 오른쪽 무릎을 잃은 6세 소년을 사람들은 ‘고무다리’ ‘다리병신’이라 놀려댔다. 소년은 “학교 가는 30분의 길이 언제나 지옥 같았고, 피투성이가 된 다리에 후시딘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했다. 본인이 선택한 장애도 아니었다. 의족이 망가지는 날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자신감을 잃고 숨던 소년은 ‘빙판 위의 메시’가 돼서 평창패럴림픽 아이스슬레저하키(아이스하키) 금메달에 도전한다.

정승환은 “링크 위에서 마음껏 뛸 수 있다는 즐거움 하나로, 가족들에게만 보여줬던 내 절단된 다리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입학 이후 시작한 아이스하키를 ‘한 번의 용기 있는 시작’이라고 부른다. 그를 아이스하키의 세계로 이끈 이종경·장종호가 금메달에 함께 도전한다.

아이스슬레저하키에서 공격적인 플레이로 유명한 최광혁의 좌우명은 “절대 지고서는 좋은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태어난 그는 음식을 구걸하는 ‘꽃제비’였다. 13세 때 단속 요원들을 피하다가 열차에서 떨어졌다. 마취도 없이 왼쪽 발목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먼저 탈북한 아버지의 연락으로 기적처럼 2001년 대한민국 땅을 밟았고, 2014년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북한에서 온 국가대표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주목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독기를 품고 열정적으로 훈련에 몰입하는 그를 보면 누구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9일 개회한 평창패럴림픽에는 대한민국 36명의 선수가 6개 종목에 참가한다. 36명의 선수는 모두 최선을 다하는 자세,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중시하는 스포츠 좌우명에 따라 이 자리에 섰다. 시각장애로 손실된 균형감각을 키우기 위해 5세 때부터 설상에 섰던 알파인스키의 양재림은 “안되면 될 때까지”라고 했다.

소치패럴림픽에서 통역스태프였지만 이번에는 직접 국가대표로서 노르딕스키 경기에 참가하는 이정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고 했다. 정승환과 함께 아이스슬레저하키에 나서는 이재웅의 좌우명도 이정민과 같다. 장종호·한민수는 똑같이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스포츠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선수들은 대부분 주변의 권유로 스포츠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재활과 심리적 치료를 위한 실제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그럴 듯한 이유들도 있다. 스노보드의 최석민은 “단지 달리고 싶어서”라고 했다. 아이스슬레저하키의 이지훈은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6명 가운데 분만사고 등으로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선수는 7명에 불과했다. 군대에서 장갑차 전복 사고를 당한 선수도 있고,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입은 선수도 있다. 모두가 불의의 사고에 낙담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 사회적 편견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인물들로 꼽힌다.

이명호 장애인체육회장은 “패럴림픽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