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 속칭 인권운동가들이 2012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표현의자유를위한연대)를 출간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 권의 책 안에서 주장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앞쪽에선 “국가 규제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더욱 확충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지만 뒤쪽에선 “동성애자 등을 비판하는 표현은 규제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 제한을 주장했다. 쉽게 말해 자신들의 목소리는 확충해야 하지만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성애 비판이 명백·현존하는 위험?
표현의 자유는 정신적 자유권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민주사회의 초석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상 최대한 보장을 받는다. 이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임을 증명해야 한다. 국가 존립과 안전을 위협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만한 분명한 위험성이 있는 과도한 표현을 할 때만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나 종북, 사이비 종교에 대한 비판, 단순의견·감정표현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혐오표현 규제론자들은 혐오표현의 대상을 소수자로 한정하고 “소수자 혐오의 문제가 되는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내 정교하게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영준 변호사(법무법인 저스티스)는 “동성애자나 사이비 신도, 좌파 사상가들이 자신의 표현은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면서도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표현에 대해선 혐오죄를 만들어서라도 처벌해야 한다며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위 혐오표현을 정말 규제하고 싶다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퇴출시키면 된다”고 충고했다.
소수자 혐오? 범주조차 합의 안 돼
문제는 혐오표현의 대상자라는 소수자 범주조차 한국사회에서 명확하게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혐오표현 규제론자들의 기준에 따르면 성소수자 범주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수간자 근친상간자 등이 포함된다. 소수 종교 신도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신도 등이, 소수 사상가에는 종북주의자 테러리스트가 포함된다.
이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혐오로 둔갑하면 성도덕 문란과 사교(邪敎) 유행, 사회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표현의 자유를 활용해 공론의 장에서 잘못된 사상을 비판한다(표 참조). 정부와 결탁하려는 이단세력을 견제하고 고위 공직에 침투하려는 종북주의자를 감시한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자유에 근거해 이단과 동성애, 과격 이슬람을 비판하며 정신적 자유를 실현한다.
이정훈 울산대 법학과 교수는 “서구사회에선 혐오표현 규제논리가 오히려 해당 구성원들에게 피해자 의식을 갖게 해 하찮은 문제에 너무 집착하도록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혐오표현 규제는 새로운 형태의 검열로, 이 논리에 따라 소위 소수자들이 소송을 남발할수록 사회적 지위가 추락하고 사회에서 분리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혐오표현 규제’무엇이 문제인가] 앞에선 표현의 자유 외치며, 뒤에선 반대 표현 규제
입력 2018-03-09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