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를 일상의 위드유로] 서지현 검사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형법 307조 개정해야”

입력 2018-03-09 05:00 수정 2018-04-02 16:27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위헌법률심판 소송을 해서라도 다퉈볼 생각입니다.”

지난 1월 말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던 서지현 검사가 당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할 우려에 대해 묻자 한 이야기다. 현직 검사로 법을 잘 아는 그조차 사실을 폭로하면서 법률적 다툼을 각오해야 했던 셈이다. 세상에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도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면 죄가 된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 때문이다.

한국사회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흐름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 조항이 성폭력 피해 공론화를 위축시키는 요소로 지목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법 개정 움직임도 있다.

다만 현행법으로도 미투 운동처럼 폭로를 통해 얻어지는 공공의 이익이 분명한 경우 법원은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해자들이 맞소송을 제기할까 두려워 고발을 주저하는 피해자가 없도록 이 부분을 적극 알리고 법 개정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판례는 “미투 등 공익적 진실 공개=무죄”

형법 제307조1항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진실을 말했어도 상대방이 명예가 훼손당했다고 느꼈다면 고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다만 실제 명예훼손죄가 인정되는 요건은 단순하지 않다. 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인 ‘공연성’과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 특히 같은 법 310조 “진실한 사실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보충 규정에 따라 공익적이고 진실된 내용은 무죄로 인정하는 게 판례다.

대법원은 2008년 “학교 교장이 부당한 차 접대 요구를 한다”는 글을 군청 홈페이지에 올린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교장에 대한 명예훼손은 맞지만 작성 동기가 공익성을 가지므로 310조의 불처벌 사유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글을 올린 이유가 남녀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관한 것이었고 글이 올라온 후 해당 문제점이 해결되는 긍정적 결과가 나온 점 등을 고려한 판결이었다.

지금의 미투 운동처럼 성추행 사건을 알린 여성단체도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대법원은 제자 성추행 의혹을 받던 국립대 교수의 실명과 범죄 혐의 등을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여성단체에 대해 2005년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단체와 교수 사이에 어떤 개인적 감정도 없었고 해당 교수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점, 그 표현 자체도 객관적 진실 등을 적시하고 있는 점에 비춰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공무원 비리 의혹 제기, 특정 단체의 업무와 관련된 의혹을 공개한 경우, 분쟁이 얽힌 판결 결과를 공표한 행위 등을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봤다.

거세지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기 요구, 왜

공익성을 인정받고도 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특정인에게 “이 사람은 벌금 80만원을 받은 적이 있는 전과자다”라고 소리쳐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아파트 동 대표에 대해 대법원은 공표한 사실에 인신공격적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유죄로 판단했다.

발언의 진실성이나 공익성은 발언자(공표자)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미투 피해자들이 일단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면 무너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미투뿐 아니라 사회적 비리 등을 세상에 고발하려는 이들도 명예훼손 위험성을 두려워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사실관계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현행법에 있는 한 모든 표현 행위가 명예훼손죄의 잠재적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발의한 법개정안도 국회 계류 중이다. 고소당한 자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하는 형사처벌 규정 대신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쪽에서 손해를 입증하는 민사적 책임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 1944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절반이 명예훼손 폐지에 찬성했다.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제기한다. 개인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자유 역시 헌법이 보호해야 할 가치라는 점 때문이다. 민사 소송에만 맡길 경우 오히려 법률적 대응이 어려운 약자가 명예훼손 피해에 더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투 문제에서도 성폭력 가해자 측이 피해자의 개인적 이력을 공표해 또 다른 의미의 ‘2차 피해’를 낳을 여지가 있다.

법 개정 문제는 차분히 논의해가되 당장 미투 피해자들이 노출돼 있는 피소의 부담을 줄여주고 위축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게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형혜 변호사는 “현행 판례상으로도 미투 같은 경우 대부분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우선 이 부분을 적극 알려 위축되지 않게 하고 실제 고소를 당할 경우 개인이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법률 지원을 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영 양민철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