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테러 ‘신경물질’, 러시아 정부 개입 스모킹건?

입력 2018-03-09 05:00
영국 솔즈베리시 쇼핑센터 CCTV 화면에 지난 4일(현지시간)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로 추정되는 남녀가 걸어가고 있다.AP뉴시스

최근 영국에서 테러를 당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가 비밀 정보기관에서나 구할 수 있는 신경작용제(nerve agent) 물질로 공격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에도 소위 ‘배신자’를 처단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영국 경찰은 지난 4일 런던에서 145㎞ 떨어진 솔즈베리시 쇼핑센터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66)과 딸 율리아(33)를 공격하는 데 쓰인 물질이 신경작용제의 일종으로 밝혀졌다고 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BBC방송은 일반 범죄·테러단체에서는 이런 물질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부가 사건의 배후일 것이라고 전했다.

푸틴 집권 뒤 러시아는 반정부 인사, 언론인, 기밀을 외국에 넘긴 전직 스파이 등을 암살해 왔다. 대표적으로 푸틴의 우군이었다가 야권으로 돌아선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는 2015년 무장 괴한의 총격으로 숨을 거뒀다.

2006년에는 전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런던의 한 호텔에서 독극물이 담긴 차를 마셔 사망했다. 같은 해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경찰국가로 만든다고 비판하다 전문 킬러에 의해 암살됐다. 동료 인권전문기자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는 2009년 체첸에서 납치된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함께 일한 인권변호사 스타니슬라프 마르케로프도 같은 해 언론인 아나스타시아 바부로바와 크렘린(대통령궁) 인근에서 사살됐다.

이외 올리가르히(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포브스 러시아판 편집장 폴 클레브니코프, 야권 인사인 세르게이 유센코프가 러시아 정부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건의 배후가 러시아로 확정될 경우 영국과 러시아 관계는 추가 경제제재 등으로 더욱 냉각될 전망이다.

다만 오는 6월 열릴 러시아 월드컵에 영국이 불참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사건 직후 러시아 월드컵 불참을 고려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축구팬들의 항의를 받고 “선수단이 아니라 관료들에 한해 이야기한 것”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