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가 대세… 민사로 해결

입력 2018-03-09 05:00

명예훼손을 형법상 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나라는 더욱 드물다. 선진국 중에서는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정도가 대표적이다.

우리 형사법체계가 따르고 있는 독일도 진실한 사실을 말하면 대부분 처벌하지 않는다. 명예 침해 정도가 큰 정치인 등 공인의 경우에만 진실한 사실을 말했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마저도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면 처벌받지 않아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명예보호보다 표현의 자유에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연방법 상으로는 명예훼손 처벌 조항이 없다. 매사추세츠주, 미네소타주, 몬태나주, 뉴햄프셔주 4개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명예훼손죄가 폐지된 상태다.

현재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 러시아, 이탈리아, 터키, 몽골, 케냐,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이 대부분이다. 가나와 스리랑카, 멕시코, 그루지야 등은 2000년대 초반 명예훼손죄를 완전 폐지했다.

이처럼 세계적 추세는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우리나라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했다. 우리 정부는 이 권고에 대해 내년까지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폐지론을 펴는 법조인들은 “사실적시를 했을 경우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상황은 국가가 지나치게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라며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명예훼손죄가 폐지되면 형법상 죄를 물을 수는 없다. 다만 민사상 책임은 지울 수 있다.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구제받는 방식이다. 형사처벌의 범죄 제재 효과는 사라지지만, 금전적 부담을 지워 무분별한 명예훼손 행위를 막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종종 천문학적 규모의 액수가 청구되기도 한다. 2016년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아는 영국의 일간지를 상대로 1676억원을 배상하라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