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를 비롯한 12개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협의회’가 8일 발표한 성폭력 근절 대책은 진작 시행돼야 했었을 것들이다. 그나마 미투 운동 때문에 마련됐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만연한 성범죄에 대해 형량을 높이는 등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명예훼손 소송이나 가해자의 보복, 악성 댓글 등 2차 피해를 방지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특히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권력형 또는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성폭력의 근절에 중점을 둔 것은 아주 적절하다. 미투 현상은 단순한 성폭력이 아니라 갑을관계나 한 줌의 권력을 이용한 악질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추방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 전체가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가벼운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대해서는 일탈로 간주하거나, 특히 이런 행위가 있어도 덮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식의 방관자적 행태가 이 지경까지 곪아터지게 만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폭로됐거나 의혹이 제기된 유명 인사들이 보인 반응은 실망스럽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사과 기자회견을 전격 취소했고, 고은 시인은 외국 언론을 통해 반박하기까지 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피해자 주장이 완벽한 소설이라고 부인했다. 유명 인사들의 자성은 비록 잘못은 했더라도 미투 운동이 긍정적이고 올바른 결과로 이어지는 데 보탬을 줄 수 있다.
특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일상에서의 성폭력이다. 유명 인사들에게 당한 것이야 여론의 관심을 받아 그나마 엄정한 처리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기업이나 열악한 조직, 소소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성폭력은 ‘나도 당했다’고 해봐야 본인만 피해를 보고 왕따 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투 운동 이후(1월 30일∼3월 6일) 한국여성의전화에 접수된 상담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5% 증가했다. 유명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도 이렇게 많다는 뜻이다. 큰일이 터지면 늘 정부의 거창한 대책이 나온다. 그리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흐지부지되곤 한다. 미투 운동은 사회적 약자를 찍어 행하는 범죄,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신뢰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그래서 이 대책은 흔들림 없이 시행해야 한다.
[사설] 범정부적 미투 대책, 흔들림 없이 시행하라
입력 2018-03-08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