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좀비기업 혈세로 연명시키는 일 없어야

입력 2018-03-08 17:45
정부가 8일 발표한 중견 조선사 처리 방안은 문재인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을 보여주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2010년부터 세금으로 연명해온 성동조선해양을 법정관리에 넣기로 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STX조선은 자력 생존이 가능한 수준의 고강도 자구노력과 사업재편에 대한 노사 확약을 조건으로 살리기로 했다. 추가 자금 지원은 안 하기로 했지만 구조조정 시기를 또 한 번 놓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금까지 STX조선에는 6조원, 성동조선에 4조원 등 10조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채권단의 자금 지원이 끊기면 두 회사 모두 사실상 생존이 어렵다. 두 회사는 지난해 11월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은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겠다며 재실사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연초 조선사를 방문해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이들 조선사 근로자 입장에선 ‘희망고문’이나 다를 바 없다.

글로벌 업황 부진으로 조선해운업은 몇 년째 위기를 겪고 있다. 본격 구조조정이 시작된 2015년 이후 채권단의 출자전환까지 포함하면 20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입됐다. ‘대마불사’ 논란 속에 대우조선에도 두 차례에 걸쳐 10조원이 들어갔다. 경쟁국에 대해 뚜렷한 기술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중소 조선사들은 이번 구조조정으로 회생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수십년간 세계 1위 자리에 있었던 한국 조선업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조선업이 몰락한 것은 호황에 취해 자발적 구조조정을 게을리한 결과다. 조선업은 천수답처럼 업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신세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한국GM과 금호타이어 등 다른 산업 구조조정도 경제 원리대로 풀어야 한다. 좀비기업이 세금으로 연명하는 일은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