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입력 2018-03-09 00:00

지난달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에서 깜짝 이벤트는 단장 현송월의 등장이었다. 현송월은 뜨거운 박수 속에 통일을 염원하는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을 열창했다.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 그녀는 무대 위에서 “아주 따뜻한 겨울입니다”라고 인사했다.

과연 봄을 이기는 겨울이 있으랴. 얼어붙은 이 땅의 미움을 이기는 봄은 용서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내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당시 유대인의 전통에서 용서의 횟수는 세 번까지였으나 베드로는 인심을 크게 써서 일곱 번까지 용서를 제안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르시기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끝없는 용서를 말씀하신다.

이어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의 한 비유를 들려주셨다. 어느 날 왕에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었다. 그에게는 빚을 갚을 돈이 없었다. 왕은 그에게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다. 이에 종은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라고 애원했다. 그를 가엾게 여긴 임금은 종을 놓아주고 빚을 사해 주었다. 빚 전체를 즉각적으로 탕감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붙잡고 말하기를, “내게 빚진 것을 갚으라”고 다그쳤다. 그때 그의 동료는 애원했다.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이 말은 조금 전 그가 임금께 드린 간청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청을 들어주기는커녕 그를 끌고 가 감옥에 가두었다.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은 종을 불러 말했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나는 너에게 그 빚을 다 없애 주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그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왕은 그 종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처벌을 담당하는 형리들에게 그를 넘기었다.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주님께 용서받은 것처럼 우리 이웃의 죄를 용서하라는 것이다.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의 은혜는 반납되고 용서도 취소된다는 말씀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는 무려 27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그는 훗날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정적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만델라는 “자유를 얻기 위해 감방에서 나올 때 내 고통과 증오를 이곳에 남겨두고 가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감옥 속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모든 분노와 노여움을 감옥에 두고 걸어 나왔다.

인간을 향한 용서가 없다면 하나님의 용서도 없다. 얼마나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인가. 인간의 용서가 하나님의 용서 조건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감히 하나님의 은혜에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의 용서다. 그러나 절대적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용서를 나의 작은 용서와 연결하여 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천국의 하한선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반목하고 갈등하는 오늘, 서로 용서를 구하라. 두텁게 드리운 갈등과 불신을 거둬내는 것은 따스한 용서의 힘이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박노훈(신촌성결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