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여자가 ‘목소리’를 가진 대가

입력 2018-03-09 05:05

사회 전반에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이 한창인 가운데 한국 페미니스트의 원조 나혜석(1896∼1948)의 선집이 나온 건 의미심장하다. 나혜석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한 신여성으로 화가이자 문인이다. 책에는 그가 쓴 소설 논설 수필 대담 등 열일곱 편이 실렸다.

나혜석은 당대의 뉴스메이커였다. 여성 최초로 서양화 전시회를 개최하고 조선미술전람회,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 등 공모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반복하며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자전적 소설 ‘경희’를 발표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 삶은 영화처럼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이었다. 약혼자의 죽음, 변호사인 김우영과의 순애보 같은 사랑과 결혼, 약혼자의 무덤으로 찾아간 신혼여행, 외도와 이혼, 그리고 무연고자 병동에서의 비참한 죽음….

핑크빛이든 검은색이든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 삶이다. ‘남자는 칼자루를 쥐고 여자는 칼날을 쥔’ 세상에서 글은 나혜석에게 무기였다.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당대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기 위한.

책을 펼치면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100여 년 전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며 그가 느꼈을 불안과 갈등, 절망과 용기 등이 손에 잡힐 듯 만져진다. 소설 ‘경희’에는 여성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항변이 분명하다. ‘경희도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다.’(65쪽)

이혼 후 4년 만인 1934년 ‘삼천리’ 8월호와 9월호에 발표한 ‘이혼고백장’을 보면 그녀에게 덧씌워진, ‘이혼도 불사하는 당당 신여성’의 이미지가 흔들린다.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조선 남성의 이중성을 질타하고, 재산의 반분을 요구할 줄 아는 깨인 신여성이긴 했다. 이혼의 단초가 된 최린과의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자신을 ‘장발장’에 비유하며 해명하고, ‘어린것들의 전정(前程·앞날)을 보아 내가 굴하자’라고 다짐하며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보통 엄마’의 모습도 있었다. 이혼 후 예술을 통해 재기하려했던 노력을 육성을 통해 듣는 것은 처절하다.

책이 빛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평론가들에 의해 신화화된 해석, 박제된 신여성 이미지를 벗겨내고, 육성을 통해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삶을 만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