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 무패 우승’ 벵거의 몰락

입력 2018-03-08 05:03
사진=AP뉴시스

선수단 운영에서 선구자였지만
현대 축구 트렌드에 뒤처져 추락
경질된 후 PSG 감독설도 나돌아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의 무패 우승을 이끌며 한때 최고 명장 반열에 올랐던 아르센 벵거(69·사진) 감독은 왜 몰락하게 된 것일까.

아스널 공식 서포터스 그룹인 ‘아스널 서포터스 트러스트’는 7일(한국시간) 100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를 토대로 “벵거 감독과 계약을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88%에 달한다”고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전했다. 이는 벵거의 현재를 보여주는 단적인 모습이다. 20년 넘게 아스널맨이 돼온 명장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하고 퇴출 위기에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변화하는 축구 트랜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낡은 전술을 고집한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1996년 9월 아스널의 사령탑에 오른 그는 무려 22년간 원팀 감독으로 자리잡고 있다. 초기에는 적극적인 유망주 발굴과 체계적인 훈련 기법 도입으로 그는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또 채식 위주 식단을 운영하는 등의 파격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선수단 운영은 효과를 발휘하며 2003-2004시즌 EPL 무패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벵거 감독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무패신화를 이끌고 EPL을 주름잡은 티에리 앙리, 로베르 피레가 벵거의 애제자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닥친 오일머니의 공세와 아스널식 선수단 관리가 보편화되면서 벵거의 고초는 시작됐다.

특히 전술 연구 및 상대팀 분석의 소홀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리그의 상향 평준화로 매 경기마다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면서 상황에 맞는 지도자의 전술 운용이 긴요할 때임에도 벵거 감독의 맞춤형 전략은 항상 2% 부족한 모습이었다. 지난 시즌 벵거 감독은 부임 이후 처음으로 포백 수비를 접고 스리백 전술을 활용했다. 하지만 EPL 트렌드에 한 박자 처진 대응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전술의 귀재로 불리는 호셉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과 안토니오 콘테 첼시 감독 등과 계속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여기에 용병술과 포메이션 변화를 통한 임기응변에도 능하지 못해 팬들의 실망감을 키웠다.

아스널은 2003-2004시즌 무패 우승 이후 EPL 무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시즌엔 리그 5위에 머물며 벵거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진출에 실패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다. 이날 기준 승점 45점으로 6위인 아스널은 리그 선두 맨체스터 시티(승점 78)와 승점차가 33점에 달한다. 우승은커녕 두 시즌 연속 UCL 진출실패가 유력한 상황이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90년대 정말 새로운 시도를 할 줄 알았던 선구자가 벵거 감독이었다”며 “다만 변화한 시대를 그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벵거 감독은 나이가 들면서 연구나 분석 등 사전 준비도 부족하고, 기가 막힌 전술 변화를 보여주는 경우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국 일간지 미러 등은 이날 UCL 16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한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PSG)의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경질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벵거 감독이 유력한 후임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