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 2020년부터 선박 배출 황산화물 비중 규제… 기존 3.5%서 0.5%로 낮춰
LNG 추진 선박 대안으로 부상 올부터 수주 물량 크게 늘 듯
국내 조선업체 점유율 높지만 내수시장 정체 땐 경쟁력 약화
LNG벙커링 인프라 구축 등 마스터플랜 수립 서둘러야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시장이 열리고 있다. LNG 선박은 강화되고 있는 해상환경 국제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이미 여러 나라의 대형 선사들은 낡은 선박을 잇따라 LNG 선박으로 대체하고 있다. 침체에 빠진 국내 조선업계로서는 상황을 반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국내 해운업계의 LNG 선박 도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관련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아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정부와 산업계가 거대한 변화 흐름에 제때 올라타지 못하면 앞으로 수십년 동안 뒤처지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LNG 선박의 시대’가 온다
해운·조선 전문가들은 올해를 LNG 선박산업의 원년으로 본다. 해상환경 규제 강화 시점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시장이 성장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각 선박이 내뿜는 배출가스에서 황산화물 비중을 기존 3.5%에서 0.5%로 낮추도록 하는 규제를 적용한다. 전체 해역이 대상이다. 국제협약에 따른 조치로 모든 선박은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황산화물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LNG 선박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선박 1척을 건조하는 데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부터 수주전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은 비교적 재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7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 LNG 선박 건조 시장의 약 43%(2015년 기준)를 점유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LNG 벙커링선(다른 선박에 LNG를 공급하는 선박)을 수주, 지난해 인도했다. STX조선해양은 메이저 석유회사인 셸(Shell)로부터 LNG 벙커링선을 수주했다. 현대미포조선은 국내 최초의 LNG 상선을 만들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역시 잇달아 LNG 선박 2척씩을 수주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폭발적 성장세를 감안하면 LNG 선박 시장은 수주물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조선업계에 반환점(터닝포인트)이 될 수 있다. 국제 표준인증 기관인 DNV-GL은 2025년까지 LNG 선박 관련 신·개조 시장이 약 15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이 시점까지 새로 건조될 LNG 선박은 1962척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다만 엔진을 비롯한 핵심 기자재를 북유럽 기업들에 의존한다는 점은 해결 과제다.
국내 선사들 아직 ‘관망’
조선업계의 선전과 달리 국내 해운업계의 LNG 선박 도입률은 미미하다. 현재 국내에서 운항 중인 LNG 선박은 2척에 불과하다. 인천항만공사가 2013년 도입한 에코누리호, 지난 1월 출항한 포스코의 LNG 상선 그린아이리스호가 전부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김우호 기획조정본부장은 “선박 가격이 비싼 데다 관련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국내 선사들은 대부분 LNG 선박을 관망하고 있다”며 “국내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조선업계도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김 본부장은 “정부가 선박 도입과 인프라 확충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을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시범사업 등으로 관공선을 LNG 선박으로 교체하는 동시에 주요 항만에 LNG를 공급할 수 있는 벙커링 설비를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먼저 시장을 키워 민간기업 참여를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정부가 하라는 주장이다.
정부도 마냥 손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정부는 2016년에 ‘LNG 추진 선박 연관산업 육성 방안’을 내놓았다. 새로 건조하는 관공선의 일부를 LNG 선박으로 하고, 성과에 따라 규모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LNG 선박을 도입한 선사 등에 항만시설 사용료를 100% 깎아주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LNG 선박 관련 핵심 기술 개발 사업 지원도 진행 중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당시 발표한 계획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민간 선사들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낼 정도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LNG 선박 시대로의 전환을 늦출 수 없는 만큼 올해에 더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항 ‘LNG 벙커링 기지’로 부상
정부가 장기적으로 관심을 둬야 할 분야는 벙커링 인프라 구축이다. 현재 국내 주요 항만에는 LNG 선박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벙커링 인프라)이 갖춰져 있지 않다. 정부는 부산항과 울산항을 벙커링 기지로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25년까지 6000억원을 투입해 부산항 안에 LNG 벙커링 시설을 갖추고, 울산항의 경우 에너지 물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해상 부유식 벙커링 터미널’을 만드는 걸 추진 중이다.
벙커링 설비를 갖춘다는 건 단순하게 국내 LNG 선박 시장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 국내 항만이 ‘동북아 LNG 벙커링 기지’로 발전할 가능성도 함께 열린다. LNG 선박은 기존 유류 선박에 비해 운항거리가 짧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더 큰 LNG 탱크를 장착하면 해결될 문제지만 그만큼 적재량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중간에 LNG를 보충할 수 있는 벙커링 기지를 찾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주지역으로 향하는 LNG 선박은 동북아의 항만에서 반드시 LNG를 충전해야 한다. 국내 항만이 미주노선의 마지막 기항지인 점을 감안하면 LNG 벙커링 기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상당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5년 실시한 용역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항만 가운데 LNG 벙커링 기지로 최적지는 부산항이다. 벙커링 수요가 가장 많은 선박은 대형 컨테이너선이고,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부산항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LNG를 안정적으로 수급하기 위해 주요 LNG 수출국인 러시아와의 협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김 본부장은 “부산항에 벙커링 기지를 구축하는 정부 정책의 방향은 옳다. 다만 기지를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그 전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소규모 인프라 구축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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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3-0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