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상태 빠진 여권
"충청권 선거는 물 건너갔다" 전략 수정 불가피 목소리 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의혹 사건 파문이 6·13 지방선거를 앞둔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감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숨죽인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지만 선거전략의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 전 지사 성폭행 의혹에 민주당 내부는 패닉 상태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6일 "일단 충남지사 선거는 어렵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보수적인 충청 유권자를 감안하면 충남은 물론 대전과 충북, 세종시도 자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선 민주당 소속 후보가 대전시장과 충북·충남지사, 세종시장을 모두 석권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안 전 지사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충청권뿐 아니라 전국의 진보진영 후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특히 보수세력 결집 움직임이 나타나는 PK(부산·경남)가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한 영남 의원은 "(파문의)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민주당 내부는 하루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당 지도부는 다른 현안에 대한 메시지를 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예정됐던 공개회의를 취소했다. '안희정의 친구'라는 프레임으로 충남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박 전 대변인은 입장문에서 "안 전 지사의 친구이기에 더욱 고통스럽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안타까움"이라며 "이 시점부터 모든 선거운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다음 폭로 대상이 누가 될지에 당의 온 시선이 쏠려 있다"며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공천 파동으로 인한 선거 패배가 우리 당에서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6년 여당이었던 한국당은 4·13총선 직전 극심한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지지층이 대거 이탈했다. '낙승'을 예상했던 한국당은 민주당에 1석 차이로 패배, 원내 1당을 넘겨줬다.
당내에선 지방선거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어제 낮까지만 해도 여유 있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력을 다해야 할 판"이라며 "현역의원 출마 자제라든가, PK 집중 공략 등의 선거전략은 이제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당선 가능성을 중심으로 후보를 선출해 '필승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 지도부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한 최고위원은 "안 전 지사 파문이 반영돼 발표되는 여론조사의 당 지지율 변동 폭을 지켜봐야 한다"며 "현 시점에서 선거전략 전면 수정 등을 말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간 얘기"라고 말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선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선을 그었다.
추미애 대표는 이틀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추 대표는 페이스북에 "어제 근심스러운 눈으로 저를 대하는 두 딸을 보기가 부끄러웠다"며 "민주당 대표로서, 엄마가 된 심정으로 단단한 각오를 갖고 그릇된 성문화를 바꿔 내겠다"고 밝혔다.
최승욱 윤성민 기자 applesu@kmib.co.kr
■총공세 나선 야권
"미투 가해 정권 vs 순수 보수" "탁현민 사퇴"… 靑에도 화살
자유한국당은 6·13 지방선거를 '미투 가해 정권'과 '순수 보수 세력'의 대결로 규정했다. 또 더불어민주당을 '성폭력당' '성폭력과 더불어 사는 민주당'으로 불렀다.
야권은 6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건을 겨냥한 총공세를 폈다. 한국당은 "진보진영의 이중성에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올라온다"고 맹비난했다. 야권은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인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을 다음 타깃으로 정하고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건은 6·13 지방선거를 석 달여 남겨놓은 상황에서 메가톤급 변수로 부상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겉과 속이 다른 민주당과 좌파 진영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성폭력당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충남지사 후보를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당은 이번 사건이 수세에 몰렸던 지방선거 판도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안희정 성폭행이라는 여권의 초대형 악재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반사이익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홍준표 대표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한국당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미투 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 나와 우리 당 최교일 의원을 덮어씌우기 위한 출발로 봤다"며 "그러나 그 운동이 본격화되니 민망한 사건들이 좌파 진영에서만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투 운동을 가열차게 해서 좌파들이 좀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홍 대표는 전국여성대회 직후 안 전 지사에 대해 "대학 후배고 개인적으로도 친해 말하기 곤혹스럽다"며 "어떻게 저런 식으로 처신을 했나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기류도 감지된다. 야권에서도 '성폭행 의원'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성폭행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요행수로 지방선거를 치를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투 운동은 사회 대변혁을 이끄는 새로운 기류"라며 "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인사를 공천에서 원천 배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른미래당도 공세에 가세했다. 박주선 공동대표는 "민주당과 집권세력은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상욱 정책위의장은 "안 전 지사는 검찰에 스스로 출두해 수사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최고위원은 특검 수사까지 들고 나왔다.
야권은 탁 행정관으로 과녁을 옮겼다. 홍지만 한국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 주변엔 미투 가해 인사가 왜 이렇게 많은가"라며 "탁 행정관이 왜 그 자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 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탁 행정관을 계속 두고 있는 것은 청와대의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인식 정도가 어떤 것인지 의심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靑, 충격 속 침묵… 안희정 사태에 “공식 입장 없다”
청와대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행 의혹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건과 청와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한순간에 낙마한 데 대한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역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특정 사건에 대한 공식입장을 발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투 운동에 대해 전반적인 입장을 강력히 피력했다”며 “대통령 메시지 안에 정부가 개별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다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안 전 지사 관련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참모진은 이날 오전 현안점검회의에서 안 지사의 성폭행 의혹과 더불어민주당의 후속조치 관련 보고를 받고 이를 논의했다. 대북 특사단 파견 등으로 성폭행 의혹 사건이 회의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참모들의 충격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노무현정부를 세운 공신 중 하나이고 유력 대선 주자 아니었느냐”며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당 지지도와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연결되는 측면이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간 공개적으로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선 “피해자 폭로가 있는 경우 형사고소 의사를 확인하고, 친고죄 조항이 삭제된 2013년 6월 이후 사건은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적극적으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안희정이 던진 충격에… 與 ‘패닉’ 野 ‘총공세’ 靑 ‘침묵’
입력 2018-03-0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