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한·미 훈련에 전향적… 예년 수준일 땐 이해 입장”

입력 2018-03-06 22:03 수정 2018-03-06 23:55
대북 특사단이 5일 평양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 위원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김상균 국정원 2차장. 청와대 제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쓴 수첩. 면담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대북 특사단 면담에서 “4월 재개되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되는 것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에 진입하면 한·미 연합훈련이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심 위협으로 간주했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수석 대북 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방북 결과 브리핑에서 “우리 측 입장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나 재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며 “김 위원장이 문제를 제기하면 이 같은 취지로 설명하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때 방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게 여러 방식으로 우리 입장을 전달했고, 김 위원장이 이를 보고받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청와대가 공개한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접견 사진에선 정 실장의 수첩 메모가 일부 공개됐다. 이 중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미 연합훈련으로 남북 관계가 다시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정 실장은 “김 위원장이 연합훈련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메모했던 것인데, 김 위원장이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이 전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그동안 북한이 대외적으로 보였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북한은 특사단 방북 직전까지도 각종 매체를 통해 “한·미 연합훈련은 공화국에 대한 악랄한 도전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다”며 “미국이 군사연습을 재개하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미 연합훈련 재개는 북·미 대화의 걸림돌로 지목됐고, 정부는 훈련 재개 전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상태였다.

남북이 정상회담 시기를 4월 말로 합의한 것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이 활발히 진행되는 와중에 한반도 주변에 대규모 전략자산을 전개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에 있어 군사적인 목표는 달성됐다고 보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진 듯하다”며 “다음 수순은 경제 발전인데 이는 남북 관계, 북·미 대화 없이는 추진할 수 없다는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다른 외교소식통은 “한·미 연합훈련은 어차피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고, 북한이 반대할 근거가 없는 합법적 활동”이라며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해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했다”고 평가했다.

청와대 발표문에는 ‘북한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북측은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 부분 역시 평가가 엇갈린다. 대화가 중단되면 언제든 전략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표문에는 핵무기를 미국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는 명시적인 문구는 없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