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변함 없다”

입력 2018-03-06 21:28 수정 2018-03-06 23:50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5일 평양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진달래관에서 열린 대북 특사단과의 만찬에서 우리 측 인사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김 위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사이에 김 위원장 부인 이설주가 앉아 있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 김상균 국정원 2차장, 김창선 전 국방위 서기실장,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서 원장, 이설주.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우리 측 대북 특사단과의 면담에서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으로,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미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비핵화 의사 표명이다. 언급 자체는 북한이 과거 내놓았던 입장들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우리 정부는 김 위원장의 확약을 토대로 미국을 설득해 북·미 직접 대화를 도출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방북 결과 브리핑에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북핵 6자회담이 가동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북한은 선대(김일성)의 권위를 절대시하면서 후대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체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가 ‘유훈’임을 강조함으로써 비핵화에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이 표현은 과거보다 등장 빈도가 낮아졌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16년 5월 7차 노동당 대회에서 ‘세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조선반도 비핵화’는 사실상 폐기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두 달 뒤인 같은 해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3대에 걸쳐 지키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위원장이 대화 기간 중 핵·미사일 시험 중단 의사를 밝힌 것은 모라토리엄(일시 중지) 선언으로 해석 가능하다. 2012년 북·미 2·29합의 파기 이후 6년 만이다. 모라토리엄 다음 수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물론 관련 기술 개발까지 중단하는 동결 단계다. 이후 핵·미사일 시설과 핵무기를 해체하는 폐기 절차로 넘어간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밝힌 ‘대북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 정도에 따라 비핵화 절차 진행 여부를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협 해소와 안전 보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4월 말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접촉 등을 통해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김 위원장이 직접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초기 단계부터 우리 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의 발언은 김정일 위원장이 과거 ‘평화협정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면 비핵화할 의사가 있다’는 발언을 한 이후 가장 전향적이라고 본다”며 “비핵화 협의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이며 향후 북·미 관계에서 극적인 모멘텀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