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불분명한 안보 조항 내세워 ‘무역 뒤통수 치기’

입력 2018-03-07 05:01
안보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어 WTO에 제소돼도 유리 판단
우리 정부, 소송 제기 위해 GATT 21조 ‘예외 조항’ 주시
“한국산 대형구경강관으로 실질적 피해 입었다”… 미국 ITC, 예비 판정 내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로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폭탄 조치를 내린 뒤 불분명한 ‘안보’ 정의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와 무역을 분리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안보를 앞세워 무역 전쟁에 나서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해석이다. 동맹 관계만 믿고 방심했던 국가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에 유리한 안보예외 조항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전문가들은 6일 무역확장법 232조의 경우 반덤핑·상계관세 조사에서 증명해야 할 ‘피해’나 세이프가드 조사에서 입증해야 할 ‘심각한 피해’와 달리 안보의 명확한 기준이 없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관계자는 “수입품이 자국에 들어와서 끼친 ‘영향’을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 WTO에 제소해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이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고 나왔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미국 역시 안보 관련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1962년부터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총 28건을 조사했지만 안보에 위협을 준다는 결정은 최근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전까지 8건만 내렸다. 이 중 수입 제한 조치가 시행된 경우는 5건이었다.

일단 우리 정부는 WTO 제소를 위해 GATT 21조에서 규정한 안보예외 조항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 국제통상전략센터 유지영 연구원의 논문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 조치에 대한 통상법적 쟁점’은 GATT 21조를 “전쟁 상황과 같이 안보와 관련된 정치적 비상 상황과 이를 대비하기 위한 평상시 회원국 간 자유무역 의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가장 강력한 예외 조항”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232조가 GATT 21조 규정을 따르지 않았음을 찾아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동안 미국은 ‘필수 안보 이익’을 정의하는 사안은 어떤 기구나 국가도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2012년 체결된 한·미 FTA의 23.2조에도 ‘필수적 안보’라는 제목으로 이 같은 내용이 있다. 이러다보니 우리 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WTO에 제소하기 위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보는 “선례가 적어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한편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한국산 대형구경강관 수입으로 자국 기업이 실질적 피해를 봤다고 예비판정을 내렸다. 대형구경강관은 송유관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세아제강과 현대제철이 주로 수출하고 있으며 2016년 대미 수출액은 약 1억5000만 달러다. 대형구경강관은 아직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철강 수출품이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