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동반 ‘정상국가’ 과시… 김정일과 달리 과감·직선적
김여정 내내 배석 존재감 ‘남매 정치’ 본격화되면서 집사 김창선 비중도 커질 듯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대북 특사단을 접견하면서 상당한 파격을 보여줬다.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과감하고 직선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측 인사를 방북 당일에 만나 4시간 넘게 면담과 만찬을 한 것은 전례가 없다. 김 위원장이 만찬장에 부인 이설주를 대동한 것도 눈길을 끈다.
대북 특사단은 평양 도착 3시간 만인 5일 오후 6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진달래관에서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만찬까지 함께했다. 만찬은 밤 10시12분까지 이어졌다. 면담과 만찬 시간을 합하면 무려 4시간12분이나 된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은 이미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방남했을 당시 우리 측과 합의한 일정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특사단 접견은 첫날보다는 둘째 날 오전 중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과거 우리 측 특사단은 방북 기간 내내 접견 일정을 통보받지 못하다 남한으로 떠나기 직전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바 있다.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면담에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철이 배석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특사단과 일일이 악수하며 환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는 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측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사의를 표하자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창올림픽이) 우리 민족의 기개와 위상을 내외에 과시하고 북과 남 사이에 화해와 단합,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마련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북한 매체는 당시 접견이 “동포애적이며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어 열린 만찬에는 김 위원장 부인인 이설주와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 김창선 서기실장이 추가로 참석했다. 이설주는 만찬장에서 옅은 분홍색 정장을 입고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 위원장 사이에 앉았다. 김 위원장이 이설주를 대동한 것은 정상 부부가 함께 외교 의례를 수행하는 국제적 관례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버지 집권 시절과 다른 ‘정상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의도다. 북한은 지난달 16일 김정일 생일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 이설주를 ‘동지’가 아니라 ‘여사’로 호칭했다.
김여정은 이번에도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김여정은 특사단 접견 때 김영철과 함께 배석했고 만찬도 함께했다. 김여정은 지난달 9일 방남했을 때와 같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다. 특사단장 자격으로 김여정과 함께 방남했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영남이 북한에서 상징적 존재에 그친다는 점이 재확인된 셈이다.
김여정은 대남정책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김씨 일가 일원으로 남북 관계 현장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여정은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한은 대남·대외 이미지 개선에 김여정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김여정의 ‘남매 정치’가 본격화됨에 따라, 이들의 집사 격인 김창선의 비중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4시간12분 면담·만찬, 이설주 대동… 김정은의 ‘파격 환대’
입력 2018-03-06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