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계란으로 바위를 깨다

입력 2018-03-07 05:00

“나만 아니면…” 방관자서 “행동하면 바뀐다” 변화
침묵하던 피해자에게 용기… 사회 전반 희망의 큰 울림

‘미투(#MeToo) 운동’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여겼던 방관자들은 ‘나부터 행동하겠다’는 선언에 나섰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절망했던 피해자들은 ‘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며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연대를 이끌어내며 ‘행동하면 바뀐다’는 긍정의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날의 방관자들은 ‘미투를 계기로 나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대학생 박성관(25)씨는 6일 “처음엔 (미투 운동에) 거부감이 들었고, 범행을 저지른 사람만 처벌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가 한두 명에 그치지 않고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을 보며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박씨는 “성폭력을 방관한 사람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이번 기회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립된 채 침묵해 왔던 피해자들에게 미투는 용기를 줬다. 이아영(가명·28)씨는 대학교 재학 시절 한 교수가 ‘영(young)기를 받아야 한다’며 학생들을 포옹하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이씨는 ‘예민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까 걱정돼 웃어 넘겼다. 찝찝한 기분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씨는 “5∼6년 전엔 우리 편이 없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다르다”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총대를 메고 고발하니까 나도 용기가 생겼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있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7)씨도 “처음엔 발버둥친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생각에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가해자들이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변화의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미투가 준 용기는 피해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문화예술인과 대학생들은 연대 성명 등을 통해 공동 대응에 나섰다. 허위 폭로나 2차 피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엿보인다. 몇몇 대학 학생회에선 미투 제보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김태훈 교수의 성폭행 의혹이 제기됐던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학생회는 최근 성폭력 피해 전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이곳으로 들어온 제보는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친 뒤 피해자와의 합의 하에 공론화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미투를 계기로 한국 사회 전체가 반성을 하고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며 “성폭력이 정의롭게 해결되는 사회라는 확신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이 과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재연 황윤태 조민아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