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신설종합시장. 가죽과 가방원단 도매시장이 밀집한 이곳 골목 구석구석에는 수많은 어르신이 홀로 사는 쪽방이 밀집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외롭지 않다. 걷기 힘들어 서럽고, 찾아오는 이 없는 이들을 돌보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 140여개 시니어클럽의 모태가 된 종로시니어클럽(관장 전석달 성공회 신부)의 독거노인안전지킴이 나영애(78) 할머니와 함께 6일 독거 어르신들을 방문했다.
“아들? 못 알아들으니까 죽겄네….”
채희풍(82) 할아버지가 “나하고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이 됐어”라는 나 할머니의 물음에 “아들”이라고 답했다. 보청기를 끼고도 듣기가 힘든 듯했다. 시장 내 허름한 한옥의 방 한 칸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젊을 적 서울 동대문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이름 날리던 형사였다. 인근 교회의 성실한 집사였다는 그는 6·25전쟁 참전으로 받은 ‘호국영웅기장증’과 성경을 꺼내보였다.
그는 지난해 치매가 왔고 지난달 반려자마저 잃었다. 당뇨가 있고 관절이 안 좋아 일어서기 힘들다고 했다. 13.2㎡(4평) 남짓한 방에선 환기를 못 한 탓인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밥솥에는 오래 씻지 못한 쌀 때가 켜켜이 묻어있었다.
나 할머니는 채 할아버지에게 두유와 떡을 건넸다. 채 할아버지가 너무 세게 쥐어서인지 종이팩에 든 두유가 손으로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치매로 늦은 밤 맨발로 돌아다니다 경찰차를 타고 집을 찾아왔다는 그였다. 아들이 모시고자 했지만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어 혼자 사는 게 편하다 했다.
나 할머니가 속한 클럽 할머니들은 앞으로 매주 세 번 채 할아버지를 찾아뵙기로 했다. 반려자를 잃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장사한 나 할머니는 동네 독거 어르신들의 소식을 대부분 꿰고 있다.
나 할머니와 같은 클럽 내 독거노인안전지킴이 120여명은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말벗이 되며 생활 상태도 점검한다. 반찬도 제공하고 청소도 하는데 화장실 청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어르신이 어르신을 돌보기에 ‘노(老)-노(老) 케어’ 사업이라고도 부른다.
나 할머니는 이번엔 최명철(78) 할머니가 있는 라벨 공장을 찾았다. 4평 남짓한 공장에는 가방에 붙일 라벨이 잔뜩 쌓여 있었다. 최 할머니는 짐 더미 사이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35년째 생활하고 있었다. 5개월 전 남편을 잃었고 월세가 밀려 압류장이 붙었다고 했다. 잠들기 전 매일 먹는다는 두통약도 보였다. 그런 서러움을 토로하기를 한 시간째, 아픔을 듣는 것도 나 할머니가 맡은 일이다.
“그냥 맛나게 살고 싶어 이 일을 하죠.”
한 달에 27만원을 받으며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묻자 나 할머니가 답한 말이었다. 걸을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활동비를 모아 명절날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일도 즐겁다고 했다. 함께 있던 고현종 클럽 실장은 “어르신들께서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뭉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역시 시장에서 라벨을 붙이며 살았던 토박이다.
클럽은 독거노인안전지킴이 외에도 문화유산해설 학교교통안전지도 지하철택배 경증치매활동보조 취약계층활동지원 시각장애인안내도우미 세무서안내도우미 등 어르신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을 알선하고 지원한다. 일하는 어르신은 846명에 달한다.
클럽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어르신들로 분주했다. 직접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사랑이 전해졌다. 전석달 신부는 “나이가 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소외감, 상실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영혼을 들여다보고 정리해야 한다”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힘들고 어렵게 한평생을 살아온 분들에게 보람과 소망을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또래 챙기고 말벗 해주고… 맛나게 살아요”
입력 2018-03-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