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챙기고 말벗 해주고… 맛나게 살아요”

입력 2018-03-07 00:00
종로시니어클럽 독거노인안전지킴이인 나영애 할머니(오른쪽)가 6일 서울 종로구 신설종합시장 안에 있는 한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채희풍 할아버지에게 두유를 건네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종로시니어클럽 멤버들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고현종 실장, 나영애 할머니, 전석달 관장. 신현가 인턴기자
서울 종로구 신설종합시장. 가죽과 가방원단 도매시장이 밀집한 이곳 골목 구석구석에는 수많은 어르신이 홀로 사는 쪽방이 밀집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외롭지 않다. 걷기 힘들어 서럽고, 찾아오는 이 없는 이들을 돌보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 140여개 시니어클럽의 모태가 된 종로시니어클럽(관장 전석달 성공회 신부)의 독거노인안전지킴이 나영애(78) 할머니와 함께 6일 독거 어르신들을 방문했다.

“아들? 못 알아들으니까 죽겄네….”

채희풍(82) 할아버지가 “나하고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이 됐어”라는 나 할머니의 물음에 “아들”이라고 답했다. 보청기를 끼고도 듣기가 힘든 듯했다. 시장 내 허름한 한옥의 방 한 칸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젊을 적 서울 동대문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이름 날리던 형사였다. 인근 교회의 성실한 집사였다는 그는 6·25전쟁 참전으로 받은 ‘호국영웅기장증’과 성경을 꺼내보였다.

그는 지난해 치매가 왔고 지난달 반려자마저 잃었다. 당뇨가 있고 관절이 안 좋아 일어서기 힘들다고 했다. 13.2㎡(4평) 남짓한 방에선 환기를 못 한 탓인지 퀴퀴한 냄새가 났다. 밥솥에는 오래 씻지 못한 쌀 때가 켜켜이 묻어있었다.

나 할머니는 채 할아버지에게 두유와 떡을 건넸다. 채 할아버지가 너무 세게 쥐어서인지 종이팩에 든 두유가 손으로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치매로 늦은 밤 맨발로 돌아다니다 경찰차를 타고 집을 찾아왔다는 그였다. 아들이 모시고자 했지만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어 혼자 사는 게 편하다 했다.

나 할머니가 속한 클럽 할머니들은 앞으로 매주 세 번 채 할아버지를 찾아뵙기로 했다. 반려자를 잃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장사한 나 할머니는 동네 독거 어르신들의 소식을 대부분 꿰고 있다.

나 할머니와 같은 클럽 내 독거노인안전지킴이 120여명은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하고 말벗이 되며 생활 상태도 점검한다. 반찬도 제공하고 청소도 하는데 화장실 청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어르신이 어르신을 돌보기에 ‘노(老)-노(老) 케어’ 사업이라고도 부른다.

나 할머니는 이번엔 최명철(78) 할머니가 있는 라벨 공장을 찾았다. 4평 남짓한 공장에는 가방에 붙일 라벨이 잔뜩 쌓여 있었다. 최 할머니는 짐 더미 사이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35년째 생활하고 있었다. 5개월 전 남편을 잃었고 월세가 밀려 압류장이 붙었다고 했다. 잠들기 전 매일 먹는다는 두통약도 보였다. 그런 서러움을 토로하기를 한 시간째, 아픔을 듣는 것도 나 할머니가 맡은 일이다.

“그냥 맛나게 살고 싶어 이 일을 하죠.”

한 달에 27만원을 받으며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묻자 나 할머니가 답한 말이었다. 걸을 수 있고 사람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활동비를 모아 명절날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일도 즐겁다고 했다. 함께 있던 고현종 클럽 실장은 “어르신들께서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뭉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역시 시장에서 라벨을 붙이며 살았던 토박이다.

클럽은 독거노인안전지킴이 외에도 문화유산해설 학교교통안전지도 지하철택배 경증치매활동보조 취약계층활동지원 시각장애인안내도우미 세무서안내도우미 등 어르신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일을 알선하고 지원한다. 일하는 어르신은 846명에 달한다.

클럽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어르신들로 분주했다. 직접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사랑이 전해졌다. 전석달 신부는 “나이가 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소외감, 상실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영혼을 들여다보고 정리해야 한다”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힘들고 어렵게 한평생을 살아온 분들에게 보람과 소망을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