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은 “무역 측면에서 우리는 친구든 적이든 사실상 전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속아 왔다”며 각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역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거듭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방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백악관 회동 자리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속아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유럽연합(EU)에 대해 “우리는 거기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관세는 물론 그보다 더 심한 무역장벽 때문”이라며 “만약 그들이 우리에게 조치를 취한다면 그들의 자동차에도 세금을 매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규모 무역전쟁이 가시화되자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이례적으로 경고하고 나섰다. 아제베두 총장은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수석 대표단 회의 중 “전 세계적 무역장벽 증강을 촉발할 중대하고 실질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며 “일단 무역전쟁의 길로 접어들면 되돌리기 어렵고, 전 세계를 깊은 침체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무역전쟁의 첫 번째 도미노 패가 넘어가는 것을 총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 아직 시간은 있다”며 미국발(發) 보호무역 도미노와 보복의 악순환이 현실화돼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미국 공화당 내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공개 성명을 통해 “우리는 무역전쟁의 결과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며 이를 추진하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백악관이) 밀어붙인다면 당 차원에서 잠재적 조치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까지 경고했다. 라이언 의장의 지역구인 위스콘신주는 EU가 미국에 대한 ‘맞불 보복’을 경고하면서 언급한 오토바이 업체 할리 데이비슨의 생산지다.
케빈 브래디 하원 세입위원장도 “관세 부과는 불공정하게 거래되는 제품만 대상으로 해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당정 균열을 불사하고 ‘트럼프 말리기’에 총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반발에 대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새롭고 공정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될 때에나 철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지만,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진행 중인 NAFTA 재협상 결과에 따라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도 풀이된다. “미국 노동자와 국민에게 공정한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 협상 포인트”라는 전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진행 중인 한국에도 해당되는 압박일 가능성이 높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트럼프 “모든 나라에 속아”… WTO “무역전쟁 도미노 막아야”
입력 2018-03-07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