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규제’무엇이 문제인가] ‘모호한 혐오 잣대’로 비판 옥죄려 해

입력 2018-03-07 00:01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소속 회원이 지난 1월 벽에 부착된 반동성애 인사의 얼굴사진을 망치로 훼손하고 있다. 행성인 페이스북 캡처
지난 1월 국내 최대 동성애자 단체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페이스북에는 망치로 벽을 부수는 사진이 올라왔다. 벽면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장, 김지연 약사 등의 얼굴 사진이 붙어있었다. 행성인은 “가벽을 철거하는 김에 혐오선동 세력을 깨부수는 의식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을 본 염 원장은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유행하는 에이즈의 실체를 알리고 동성 간 성행위를 즐기다가 에이즈에 감염돼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의료행위가 어떻게 혐오라는 건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동성애자가 망치로 내 얼굴을 찍는 장면을 보는 순간 테러 위협을 느꼈다”면서 “어느 쪽이 진짜 혐오세력인지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불명확한 용어로 상대방 공격

법적 용어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명확해야 한다.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고 그에 대한 형벌이 무엇인지 분명해야 한다. 용어가 불명확하면 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법을 위반했을 때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혼란이 생겨 법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흔들린다.

따라서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싶다면 ‘혐오’가 무엇이고 ‘혐오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용어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즉 명확한 법적 용어를 잣대로 건전한 비판과 충고, 의학적 팩트 설명, 공공의 이익을 위한 비판, 망치로 상대방의 얼굴사진을 찍는 행위 중 어떤 것이 혐오표현에 해당하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혐오표현은 고사하고 혐오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합의조차 내리지 못한 상태다.

자유와인권연구소 박성제 변호사는 “혐오표현규제법안으로 규제하려 했던 표현은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도 얼마든지 처벌 가능하다”면서 “그런데도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은 혐오라는 구성요건으로 동성애와 이단 종북사상을 비판한 대법원 판례 소개, 의학적 소견발표와 충고, 싫어하는 표정, 악수 거부까지 모두 처벌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수시로 변하는 감정 측정은

혐오표현 규제의 위헌성은 내면의 감정에 의존해야 한다는 데 있다. 혐오표현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감정에 따라 체감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혐오표현금지법안은 당사자가 아니라 표현행위를 한 사람에게 혐오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입증책임을 돌려놨다.

게다가 혐오표현 규제대상 선정에도 문제가 있다(표 참조). 인종 장애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신체조건 등은 절대불변의 속성인데다 선택가능성이 없어 비판해선 안 된다. 흑인을 ‘깜둥이’로, 재일 한국인을 ‘조센진’으로, 경상도 사람을 ‘문둥이’로 폄훼하면 혐오가 맞다. 학력, 고용형태, 사회신분,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은 선택 가능성은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어서 비판 대상으로 보기 힘들다.

반면 성적지향과 종교, 사상 등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고 성 중독에 따른 의료비 지출과 도덕적 문란, 시한부종말론 유포, 사회혼란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특히 성적지향을 뜻하는 동성애 양성애 다자성애 수간 근친상간 등은 옳고 그름의 도덕적 문제로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해야 한다.

정선미 변호사(한국교회언론회 자문위원)는 “동성애자, 종북론자, 이단들이 일시적인 성적취향과 종북사상, 시한부종말론을 인종, 피부색, 장애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실제 사례나 문제점 등 진실에 대해 언급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