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5일 대북 특사단 면담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체제 생존의 주요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대목이다.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연계해 북핵 해법 마련에 나설지 주목된다.
대북 특사단은 북한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진달래관에서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만찬을 함께했다. 6일 청와대가 공개한 접견 사진에는 수석 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수첩 일부가 공개됐다.
수첩 내용을 확대해보면 ‘앞으로도 계속 노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미 연합훈련으로 남북 관계가 다시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또 한 번의 결단으로 이 고비를 극복 기대’ ‘전략무기 전개’ ‘작년 핵·미사일 실험은 유일한 대응조치, 다른 선택 無(무)’ 등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적혀 있다.
정 실장의 모두발언은 사전에 준비해 갔던 만큼 이 메모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받아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김 위원장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강한 의지를 다시 한 번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한·미 연합 군사훈련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단절됐다고 강조하고 우리 특사단에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관련한 조치들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죽음의 백조)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우려를 표시하고, 지난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자위적 조치임을 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내용이 정확하다면 김 위원장은 특사단에게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이다.
북한의 변화 조짐으로 읽히는 대목도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6일 대북 특사단 관련 보도에서 “최고 영도자 동지(김 위원장)는 조선반도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북과 남 사이 다방면의 접촉, 협력,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누었다”고 보도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통상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표현할 때는 ‘우발적인 충돌’ 같은 표현을 쓰지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같은 표현은 쓰지 않는다”며 “북한이 두루뭉술한 표현을 사용해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특사단은 이날 오전에는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남북 현안, 북핵 문제에 대한 연쇄 실무회담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이 전날 면담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밝힌 만큼 이에 대한 후속조치들이 집중 논의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방북 결과가 실망스럽지 않다”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비핵화 문제 등도 논의됐다”고 말했다.
정 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귀환 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두 사람은 이번 주 후반 미국을 방문해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특사단은 북한의 유화 제스처를 근거로 미국에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처음으로 정부 당국자와 접촉한 김 위원장의 협상 스타일도 미국과 공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김정은, 한·미연합훈련 테이블에 올렸다
입력 2018-03-06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