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력 대권주자도 몰락시킨 미투

입력 2018-03-06 18:10 수정 2018-03-06 21:41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다. 자고나면 터져나오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 대상자에 차기 유력 대권주자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현실이 참으로 민망하고 참담하다. 법조계는 물론 문화·예술계·재계·정계까지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것도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 권력과 위계를 이용해 약자에게 성폭력을 자행하고 겉으로는 가장 도덕적인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었다니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와 정무비서로 근무한 김지은씨는 5일 JTBC에 출연해 “안 전 지사로부터 8개월간 4차례의 성폭행과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미투 폭로가 한창 퍼져나가던 지난달 25일에도 “내가 미투를 보면서 너에게 상처가 됐음을 알게 됐다. 미안하다”면서 또 성폭행을 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오전 “미투 운동은 인권 실현의 마지막 과제로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가증스럽다. 처음에는 합의된 관계였다고 부인하던 그는 나중에 페이스북을 통해 사실을 인정하며 충남지사직을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피해자는 안 전 지사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일벌백계해야 한다. 김씨는 자신 외에도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성범죄 사건은 2013년 6월 친고죄가 폐지된 만큼 추가 피해도 조사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안 전 지사에 대한 제명·출당 조치로 꼬리 자르기를 해선 안 된다. 당이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서고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게 도리다.

미투 운동이 한 개인의 성범죄를 들춰내 망신을 주거나 벌주는 데 그쳐선 안 된다.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했던 것은 가해자에 관대하고 오히려 폭로한 사람이 2차, 3차 피해를 당하는 잘못된 문화 때문이었다. 미투 운동은 성범죄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사회·조직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성범죄를 저지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해 패가망신하도록 해야 한다. 10년인 일반 성범죄 공소시효도 연장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가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