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금주] 성숙 사회로 가기 위한 진통

입력 2018-03-06 18:11

‘미투’ 한파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연일 계속 터져 나오는 새로운 성 피해, 추행, 심지어 폭행 사건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걱정스럽다. 노골적이고 민망한 과거가 들춰지면서 이런 사건을 접하는 대중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하물며 그런 일을 당한 당사자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이제라도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격려해줘야 한다.

정상이 아닌 성도착증과 같은 행동을 하는 가해자도 분명 있다. 성 관련 장애는 당사자가 먼저 인식하는 개인적 장애인만큼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장애가 아닌 정상인들의 성적 가해조차 그 수위가 심한 것 같다. 주로 남성 가해자다. 여성에 비해 남성이 성적 관심이나 욕구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욕구를 자제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정상인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판단이 안 될까 싶다. 그런 판단이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힘에 대한 과신이다. 선배나 상사이기에, 또는 자신이 능력 있고 힘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과신이다. 일종의 권력 심리, 우월주의 심리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 돈이나 인간관계 같은 자원이 풍부하다 보니 좀 더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독립적이다. 가진 자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비교적 낮고, 타인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둔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고 집중하는 자기중심적 성향, 나르시스적 의식이 강해지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사회적 규범을 지키거나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압력을 적게 느끼게 한다. 행동규범이나 도덕규칙을 무시해도 자신은 용인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더 중요하기에 상대의 감정은 개의치 않고, 목표로 하는 행위를 하기 쉬워진다. 욕구를 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탈 억제 현상’이다. 권력이 있다거나 우월하다는 생각은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욕구에만 집중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의 성적 호기심이나 성적 충족을 위한 도구로서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에 대한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 대우를 서슴없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죄책감을 가진다든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어렵다. 권력이 공감과 연민 능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적 가해 행위에 대한 기억도 희미하고 진정한 사과 또한 어렵다. 끝까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사실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권력 심리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조금만 우월하다고 판단될 때 즉각 발동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우월적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남성들의 숫자가 많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저 방관해 왔던 것이다. 가해자 행동을 묵인하거나, 가해 행동이 습관화되게 방치한 방관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가해자는 그 한 사람이 아니라 방관했던 사회 구성원 모두일지 모른다. 결국 우리 사회가 그런 가해자를 만들어 냈고 그 많은 피해자를 있게 하였다.

이제라도 말초적 감각을 건드리는 호기심 충족을 위한 사안으로 ‘미투 운동’을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사람에 대한 분노로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마녀사냥 식 비난, 가해자 가족들에 대한 지나친 음해 등 2차 피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미투 운동의 진정한 근본을 희석시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에 이미 일어난 잘못에 대한 처벌은 단호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기 위한 대책과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다.

곽금주(서울대 교수·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