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윤씨 2년 전 해시태그 운동 동참 후 비슷한 경험자들에게 위로받아
가해자 명예훼손으로 되레 소송… 檢선 “재판까지 가면 힘드니 사과문·반성문 써라” 회유도
방관자의 침묵 피해자 더 고립… ‘위드유(#WithYou)’ 계속돼 야유 아닌 도움 청할 곳 있어야
2016년 12월 2일. 윤미경(가명)씨는 수면제 500알을 삼켰다. 20년 넘게 자신을 옭아맸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떨쳐내고 싶었다. 다행히 그는 구조됐고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그는 다시 힘을 냈다.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의 치유를 위해.
윤씨는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다. 자신의 성폭력을 세상에 알리고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을 건넨 용감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선언자’다. 미투 운동이 격렬하게 진행 중인 6일 윤씨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씨는 기대와 서운함과 두려움이 뒤엉킨 심정을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함께 분노하고 있어요. ‘이제는 들어주는구나. 달라질지도 모르겠구나’ 기대도 돼요. ‘그런데 왜 이제야? 조금 더 일찍 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원망도 있고요. 무엇보다 ‘잠깐 들끓다 다시 우리에게서 멀어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가장 큽니다.”
윤씨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것은 문단 내 성폭력을 공론화한 해시태그 운동(#문단_내_성폭력)이 한창이던 2016년 10월이었다.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리기까지 20여년 그리고 미투 선언 후 17개월 동안 그는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
미투 선언 전후의 삶
성폭력 피해는 윤씨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평화로운 일상이 사라졌다. 많은 피해자들이 그렇듯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시간을 보냈다. 떠올리기 싫은 순간인데도 ‘내가 왜 그랬지?’라며 곱씹었다. 자신의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기억을 헤집었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성폭력은 피해자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로 여겨져 왔다. 피해자가 ‘원인제공자’로 지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피해 사실 대신 피해자의 품행 평판 옷차림 외모 등에 더 관심을 둔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보다 수치에 방점을 찍어왔다.
“어디서든 늘 구석만 찾게 돼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웠어요. 집에서조차 커튼을 꽉꽉 쳐놓고 살았죠. 늘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뒀어요.”
홀로 감당하던 고통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은 해시태그 운동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도 당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피해자들이 만나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고 싶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어요.”
“저를 성폭행한 분의 명예를 훼손해 죄송합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리고, 법의 보호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의외의 공격을 받게 된다. 가해자들이 명예훼손, 무고, 손해배상 청구 등의 소송전을 걸어오는 것이다.
이 ‘역고소’에서 중요한 것은 혐의의 사실 여부가 아니다. 소송전 자체가 가해자의 무기가 된다. 피해자들은 고소를 당했다는 것만으로도 겁을 먹는다. 주변에서는 피해자의 잘못을 의심하는 기류가 만들어진다. 피해자들은 다시 늪에 빠진다.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수사 받으면 검찰에서 사과문, 반성문을 쓰라고 해요. 재판까지 가면 더 힘드니 합의를 보라는 거죠. ‘저를 성폭행한 분의 명예를 훼손해서 죄송합니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일을 반성합니다’ 이렇게 쓰라는 거죠. 젊은 피해자들은 검찰 조사 받는 게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해요. 사과문, 반성문은 민사 소송에 이용되기도 하고요.”
윤씨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로 결론 났다. 그러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주변에서는 “잊으라. 잊고 편히 살아라”는 조언을 건넸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했던 말과 겹친다.
“잊겠다고 맘먹어서 잊을 수 있는 일이었으면 이렇게 힘들지도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나도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싸우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되고요. 이 싸움이 끝나면,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위드유를 꿈꾸며
침묵은 때론 적극적인 행위로 해석된다. 성폭력 방관자들의 침묵도 그렇다. 성폭력을 저지르고 같은 범죄를 반복해도 나무라는 목소리가 없었다. 침묵은 가해자들을 안심시켰다. 적극적인 방조였다.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일이기도 했다.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침묵은 피해자들을 더욱 고립시켰다.
미투 운동은 침묵을 깬 누군가의 용기에 또 다른 용기가 보태지면서 커졌다. “그동안은 자기만의 소리였는데, 이제 사람들이 들어줘요. 눈을 맞춰주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는 말을 해줘요. 색안경을 끼고 야유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어요. 그게 너무 고마운 거예요.”
윤씨는 계속해서 ‘위드유(#WithYou·당신과 함께하겠다)’가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불운하게 피해를 당했더라도 도움을 청할 곳이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회가 돼야죠. 위드유가 많아지면 가능할 겁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더 많이 말 해주세요.”
문수정 기자
삽화=이은지 기자
[미투를 일상의 위드유로] 수십년 참다 용기냈는데… 돌아온 건 사과 대신 고소장
입력 2018-03-07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