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피해자’ 16명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 말해줘요”

입력 2018-03-06 05:00
연극연출가 이윤택씨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16명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관객은 성범죄자의 공연을 원치 않는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OUT’ 등의 글귀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다. 김지훈 기자

강제추행 혐의 李씨 고소… 경찰 “가해자들 혐의 공소시효 상관없이 조사”
SNS에 학생·학부모 대상 제보 창구 ‘스쿨미투’ 등장

연극인 이윤택씨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사정당국에 철저한 조사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찰은 이씨 등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가해자들의 혐의를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5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극인 김수희씨는 “오래전 벌어졌던 일이지만 이씨의 잘못을 밝히고 죗값을 받게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피해자인 홍선주씨는 “이 사건을 고백한 후 나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고 가족과 극단의 신상까지 노출돼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다”며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해 달라”고 호소했다.

기자회견에는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나 판단기준 탓에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씨 등 피해자 16명은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이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씨에 대한 고소장이 경찰에 넘어오는 대로 엄중하게 수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여청수사대는 이씨에 대한 ‘긴급출국금지’를 요청했다.

현재까지 폭로된 이씨 관련 사건은 대부분 2001∼2010년에 발생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폐지(2013년 6월)되기 전이다. 당시에는 성폭행 또는 성추행을 당하더라도 피해자가 6개월 안에 고소를 해야만 수사가 가능했다. 이 청장은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수 있고 다른 법률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의혹 해소 차원에서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미투 운동을 통해 폭로된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교수들과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내사를 진행 중이다.

미투 운동의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4일에는 극단 신화의 대표 겸 연출가 김영수씨와 배우 한재영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폭로가 있었다. 최근 페이스북에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 제보를 받는 ‘스쿨미투’ 페이지가 개설돼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