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규제’ 무엇이 문제인가] ‘혐오 낙인’ 찍힐까봐 입도 벙긋 못할라…

입력 2018-03-06 00:00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회원들이 2016년 3월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혐오감을 유발하는 퀴어 축제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만약 혐오표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런 기자회견도 통제된다.국민일보DB
문재인정권 실세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겸 국회의원이 '혐오표현규제법안'을 발의해 오해 아닌 오해를 샀다. 국민의 양심 사상 종교의 자유를 옥죄려 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으로 교계와 사회 일각에서 항의하는 소동이 일자 법안을 일단 철회했다(국민일보 3월1일자 21면 참조). 교계는 김 장관 측이 추후 법안을 손질해 다시 발의할 의향을 내비친 만큼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혐오표현 규제논리의 문제점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동성애 퀴어축제 결사반대. 인류 생명 질서, 가정, 사람 질서가 무너지면 이 사회도 무너진다.” “나는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믿는다.” “동성애는 병이며 죄악이다.”

장시간 혐오표현 연구를 해 온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이런 비판을 모두 혐오표현이라고 규정했다. 만약 혐오표현규제법이 통과됐다면 동성애에 대한 단순한 비판, 의견표명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맞을 수 있었다.

합의조차 안 된 혐오, 도대체 무슨 뜻?

그렇다면 혐오표현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기에 법까지 만들어 규제하려 했던 것일까. ‘혐오’의 의미는 표준국어사전에 ‘미워하고 꺼림, 싫어하고 미워함’으로 나온다. 즉 싫어하는 감정으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혐오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한국사회에서 합의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4월 발표한 ‘혐오표현 규제의 국제적 동향과 입법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혐오표현의 정의에 대한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이유는 혐오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는 불명확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혐오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의조차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혐오표현 규제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혐오표현규제법안을 대표발의 했던 김 장관은 혐오표현을 ‘개인 또는 집단이 갖고 있는 특성을 차별하거나 분리 구별 제한 배제하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차별 폭력 또는 증오를 선동 고취하는 행위’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했다.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사람들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의 뜻인데, 문제는 이 같은 정의가 인간 내면의 자연스러운 감정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영길 변호사(법무법인 아이앤에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인 강간 수간 근친상간 동성애 등 어떠한 부도덕한 가치에 대해 싫어하는 감정을 느끼게 돼 있다”면서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인데, 만약 이걸 혐오로 낙인찍어 통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조 변호사는 “혐오표현규제법은 국민의 사상과 감정을 일률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대단히 위험스럽고 초헌법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짓밟는 혐오논리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데 필수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 된다”고 못 박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따라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정치질서를 생성·유지시킨다. 시민들은 사상의 자유시장(market place of ideas)에서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토론하며 설득과 합의를 거친다.

이런 원칙에 따라 시민들은 한국사회의 근간을 위협하는 동성애, 동성혼, 반사회적 종교집단, 이슬람 테러 등 공익사항에 대해 비판한다. 공적 관심사(Public concern)에 대한 표현 양심 종교 학문의 자유는 헌법상 최대한 보장 받는다.

그런데 일부 비판적 언어와 표현이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준다고 혐오표현으로 낙인찍어 민·형사 및 행정 제재로 전면 차단시키겠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발상과 같다.

고영일 변호사(법무법인 가을햇살 추양)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이 가능하다”면서 “동성애와 동성혼, 사이비 종교, 종북사상이 사회에 정말 도움이 된다면 반대측의 비판에 반박하고 납득시키면 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사회적 토론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법률이라는 강제력을 동원해 반대주장을 짓밟는다면 주체사상에 찌든 북한이나 중국식 사회주의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