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압승… 소수자 손잡은 오스카 [90회 아카데미]

입력 2018-03-06 00:01
4일(현지시간)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거머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왼쪽 가슴에 ‘타임스 업’ 핀이 달려 있다. AP뉴시스
제90회 아카데미 남녀 주·조연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샘 록웰, 프란시스 맥도맨드, 앨리슨 제니, 게리 올드만. AP뉴시스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영화상(오스카)이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오명을 차츰 벗겨내고 있다. 멕시코 출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54)가 연출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4관왕의 영광을 안았다.

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미술상 4개의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이미 최다 노미네이트(13개) 기록을 세웠던 터라 이변 없는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나는 이민자”라고 운을 뗀 델 토로 감독은 “영화가 멋진 건 국경이 없기 때문”이라며 “꿈을 꾸는 분들은 여길 보시라. 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작품상 후보로 기대를 모았던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는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2관왕에 그쳤다.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은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색 소감으로 이목을 끌었다. 객석의 여성 영화인들에게 일어나 달라고 요청한 뒤 “포용이 옳은 길”이라고 외쳐 환호를 받았다.

‘다키스트 아워’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게리 올드만은 “20년 만에 이 상을 받았는데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감격해했다. 남우조연상은 ‘쓰리 빌보드’의 샘 록웰, 여우조연상은 ‘아이, 토냐’의 앨리슨 제니가 수상했다.

‘덩케르크’는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편집상 3개 부문을 휩쓸었다. ‘코코’는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리멤버 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촬영상과 시각효과상을 차지했다. 각본상은 ‘겟아웃’, 각색상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돌아갔다.

전반적으로 ‘다양성’ 이슈가 돋보였다. 특히 여성과 흑인 등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여성 주인공을 앞세운 ‘셰이프 오브 워터’ ‘원더우먼’, 흑인 인권 문제를 다룬 ‘겟아웃’ ‘블랙 팬서’ 같은 작품이 여러 차례 언급됐다. ‘머드 바운드’의 촬영감독 레이첼 모리슨은 여성 최초로 촬영상 후보에 올랐다.

골든글로브처럼 블랙 드레스 물결이 이뤄지진 않았으나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에 대한 지지의 뜻은 확고했다. 미투에서 파생된 성폭력 공동대응단체 ‘타임스 업(Time’s Up)’ 핀을 단 배우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사회자 지미 키멜은 미투를 촉발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을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주신 끝에 우리는 와인스타인을 축출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라면서 “성폭력을 막는 데 성공한다면 여성들은 이제 다른 차별에만 대항하면 된다. 남녀 동일 임금 문제 해결을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일갈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