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을 딱 한 명만 꼽으라면 한 살 터울의 동생 디에고 자코메티(1902∼1985)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코메티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성실한 조수였으며 훌륭한 모델이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을 찾으면 이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디에고를 모델로 한 조각이나 스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에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디에고는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의 ‘시작’을 함께한 인물이었다. 자코메티는 열세 살이던 1914년 처음 조각 작품을 완성했는데, 당시 모델이 돼준 인물이 디에고였다.
자코메티는 이때부터 동생을 모델로 수많은 스케치를 그렸고 회화 작품을 완성했으며 조각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자코메티의 작품 중에는 동생을 모델로 하지 않았는데도 디에고를 떠올리게 만드는 조각이 한두 개가 아니다. 자코메티 역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동생은 나를 위해 수만 번도 넘게 포즈를 취해주었어요. 제가 막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토대로 두상을 만들면 사람들은 ‘디에고가 모델이 돼주었군’이라고 말하곤 했죠.”
자코메티가 죽었을 때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들을 정리한 사람 역시 디에고였다. 미국 작가 제임스 로드는 저서 ‘자코메티 영혼을 빚어낸 손길’(을유문화사)에 이렇게 적었다.
“디에고의 손은 일생동안 형과 형의 작품을 위해 전력을 다했고,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았다. 알베르토의 재산을 분배하는 슬픈 일이 끝났을 때 디에고는 후대를 위해 그가 구해낸 마지막 작품의 청동 주물을 상속받았고, 나중에 그것을 형의 무덤에 갖다 놓았다.”
‘자코메티의 남자’라고 할 수 있는 또 한 명은 야나이하라 이사쿠(1918∼1989)다. 그는 자코메티가 가장 흡족해한 모델이었다. 자코메티는 야나이하라의 빛나는 눈빛을 좋아했다. 야나이하라는 장시간 미동도 없이 포즈를 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자코메티가 야나이하라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자코메티가 남긴 이런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디에고나 (아내인) 아네트와 일을 계속하겠지만, 내가 정작 그리고 싶은 것은 당신의 초상화예요. 내가 뭔가 진전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은 전부 당신 덕분입니다.”
야나이하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인이다. 그가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건 1954년이었고, 그가 처음 사귄 친구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였다. 야나이하라는 사르트르를 통해 자코메티를 알게 됐고,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야나이하라는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편지를 통해 자코메티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내곤 했다. 그는 1957년 자코메티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때때로 내 방에서 마치 당신이 앞에 있을 때처럼 꼼짝 않고 포즈를 취하곤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당신이 없는 방안에 혼자 모델이 되어 깊은 명상에 빠집니다. 당신이 무척 그립습니다.”
박지훈 기자
자코메티의 두 남자… 동생 디에고와 모델 야나이하라
입력 2018-03-05 1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