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선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가 남긴 걸작들만 감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별전을 찾는 시민들은 전시장 곳곳에서 고인의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자코메티의 작업 공간을 재현한 ‘자코메티 작업실’은 특별전의 숨은 명소다. 거장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 공간을 둘러보기 위해 전시가 한창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장은 자코메티의 모델이 돼준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분돼 있었다. ‘자코메티 작업실’이 마련된 곳은 자코메티가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완성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 공간 근처에 마련돼 있었다. 그곳은 23㎡(약 7평) 크기의 아담한 공간이었다.
한쪽에는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고, 벽엔 자코메티의 드로잉 작품 7점이 걸려 있었다. 사진 3점도 눈길을 끌었다. 자코메티가 작업실에서 1951년 출판업자인 샤이데거, 아내 아네트와 함께 찍은 사진이 대표적이었다. 그의 작업대를 찍은 사진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별전에서 이 공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에서 이 작업실이 갖는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나고 자란 자코메티는 1922년 프랑스 파리로 왔다. 여러 작업실을 전전하던 그는 1927년 4월 이폴리트맹드롱가(街) 46번지에 있는 한 건물의 작은 방에 둥지를 틀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한국특별전에 재현된 작업실이다.
자코메티는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냈다. 그는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는 작가였지만,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작업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작업실이 위치해있던 곳은 ‘마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인물이 1910년 건축 폐기물로 얼기설기 지은 조악한 건물이었다. 이 건물엔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난방 시설도 없었다. 복도 중간에 있는 수도꼭지가 이 건물이 갖춘 사실상의 유일한 ‘편의시설’이었다.
자코메티는 진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조각에 몰두했다. 복도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세수를 했고, 배가 고프면 작업실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몽파르나스의 싸구려 식당으로 갔다. 자코메티는 이 작업실에 처음 입주했을 때 “작은 구멍 같아서 가능한 한 빨리 옮길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이곳에 애착을 갖게 됐다. 훗날 자코메티는 이 작업실을 거론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오래 머무를수록 그곳은 더 커졌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특별전에 재현돼 있는 ‘자코메티의 작업실’을 찾는다면 묘한 감흥을 느낄 수밖에 없다. 프랑스 시인 조르주 랭부르(1877∼1970)는 1947년 발표한 ‘자코메티의 석고상들의 묘지’라는 글에서 자코메티의 작업실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곳에 쌓여 있는 석고 더미는 모두 한때는 조각품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자코메티는 그것들을 깨뜨리고 부수고 훼손하고 다시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아틀리에는 자코메티의 끈질기고 장엄한 집착을 보여주는 석고상들의 감동적인 묘지였다.”
글·사진=박지훈 기자lucidfall@kmib.co.kr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는 석고상들의 감동적인 묘지였다”
입력 2018-03-05 18:46